<김창옥 강연을 들은 후>

by 진다르크

작년에 이어 같은 장소, 같은 김창옥 강사의 강연이었다. 학동역 근처에 위치한 강연장은 이층에 있던 웨딩홀 하객들에 의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층에서 내리니 벽면에 강연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직원에게 이름을 이야기하고 입장 팔찌와 생수 한 병을 건네받았다. 작은 생수병 라벨은 김창옥 교수의 사진으로 둘러져 있었다. 약 네다섯 번째 방문한 듯하다. 매번 재밌고 유쾌한 시간이었기에 어김없이 예매를 했다. 늘 혼자 왔지만 외롭지 않았다. 강연 특성상 각자의 아픔 있는 사연들을 소개하기에 오히려 외로움을 떨치고 위로받고 공감받았기 때문이다. 오프닝 멘트는 여전히 유쾌한 김창옥 강사의 유머로 시작되었다. 제일 멀리 온 분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시간이었는데 강사의 재치 있는 말투, 센스 있는 순발력이 함박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저런 재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타고나는걸까. 나에겐 없는 재능인지라 유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늘 감탄이 흘러나온다. 내가 제일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첫 번째 사연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한 가장의 아버지가 컬러였던 자신의 삶이 어느덧 흑백이 된 삶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김창옥 강사는 재치 있는 사연자의 말투를 빗대어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고 지금처럼 유머를 가지고 즐겁게 살라는 답변을 건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항상 감사함을 찾고 유머를 생활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 번째 사연은 50대 중년 여성분이셨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엎드려뻗쳐의 체벌을 받고 몽둥이로 많이 맞고 자라서 상처와 결핍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내내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김창옥 강사는 아버지가 엎드려뻗쳐를 시킨 이유는 플랭크 자세가 코어 강화, 허리에 좋으니 딸을 위해 시킨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나 또한 엄마에게 맞은 경험이 있고 늘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자주 지르셨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샤우팅, 성악 연습을 하신 것이 아니냐며 던진 친구의 유머가 울적했던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날려주었다. 나는 유년 시절 상처와 결핍을 극복하는데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백프로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김창옥 강사도 아버지의 결핍에 벗어나는데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인생은 짧으니 너무 참지 말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화병을 늘 달고 살았고 과거를 곱씹는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늘 과거의 상처에 허우적대는 여린 나의 자아도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계속해서 표현하는 연습을 했고 과거를 계속 직면하고 어루만져 주는 훈련을 했다. 그러니 어느덧 상처받은 자아와 화병으로 자리 잡던 응어리도 사라졌다.


세 번째 사연은 30대 커플이었다. 둘 다 이직도 해야 하고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 아직 결혼자금도 마련하지 못해서 고민이라는 남성분의 사연이었다. 김창옥 강사는 오히려 부족할 때, 힘들 때의 추억이 더 오래간다며 완벽한 때는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첫 서울살이. 봉천동 반지하 3평. 정말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네 번째 사연은 혼자 오신 젊은 여성분이셨다. 회사 내에서 직장동료가 앞에서는 웃으며 친한척을 하고 뒤에서는 자신의 험담을 하는 내로남불의 동료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김창옥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말하였다.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홈쇼핑을 같이 하고 있는데 강사가 무슨 물건 팔이를 하냐는 악플 등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미래에 무료 강연을 하고 진심 어린 혼을 불어넣어 주는 강연을 위해 즉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며칠 전에 겪었다. 애국활동을 일 년 동안 열심히 한 덕분에 강남구 당협위원장을 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바쁜 일상들로 인해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지만 좋은 기회가 왔고 내가 언제 또 이러한 경험을 해보나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다 보니 덩달아 대변인이라는 기회까지 주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짧은 유튜브 소개 영상에 누군가 저딴 소리를 하냐며 얼토당치 않은 악플을 달았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며 그럼 당신이 해보라는 답변을 달았다. 추후에 친구 의견으로 삭제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화가 났다. 하지만 신과 부처님에게도 안티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누군가에게 다 사랑받을 수 없고 나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것은 욕심 아니겠는가. 그러자 어느덧 화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다섯 번째 사연은 풋풋한 갓 스무살이 된 대학생의 사연이었다. 사람이 너무나도 좋은데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다. 김창옥 강사는 남의 시선보다는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더 바라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여섯번째 사연은 유년 시절 엄마에게 받은 상처와 결핍이 성인이 되어서 여전히 자신을 작게 만들고 주눅 들게 만든다는 사연이었다. 제주도의 4,5월은 귤꽃이 만개하는 시기인데 귤 밭을 달리면 아주 진한 귤꽃 향기가 너무나도 좋아서 김창옥 강사는 천국이라면 이런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신 귤꽃은 금방 진다고 한다. 이처럼 누구는 꽃이 피는 시기가 짧고 누구는 꽃이 안 필 수 있고 열매가 안 맺힐 수도 있다. 우리도 인생이 늘 좋고 꽃이 필수는 없기에 꽃이 지는 시기에는 진 상태로, 열매가 맺지 않은 상태로 살아도 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50대 이후의 삶은 특히나 돈이 되든 안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좋아하는 활동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 사연은 5년 전에 심장마비로 근무 중 남편이 사망을 하고 혼자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딸들을 위해 자신의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계속해서 억압하고 회피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감정도 모른 채 무기력해져서 중증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고 하였다. 내내 울먹이며 말하는 사연자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창옥 강사는 교회에 나가면 통성기도가 하는데 주여 삼창을 크게 세 번 외쳐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응어리를 그렇게라도 풀라고. 감정은 억압하고 회피하면 그 덩어리가 점점 커져 나의 정체성이 되고 방어기제와 결핍을 만들어 낸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어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친구에게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의 감정을 직면하라고. 괴로워도 계속 연습하라고. 그래야 건강한 어른 자아인 내가 상처받은 나의 내면의 자아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고. 친구는 나의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모두 다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산다. 밝고 씩씩해 보이고 아무리 잘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각자 하나씩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상처와 결핍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연민하고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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