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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퍼센트 Aug 30. 2024

아버지의 여름 잠

글밭 일기 

 

 곰은 겨울잠을 자고 아버지는 여름잠을 잔다. 곰은 가을에 음식으로 겨울 몇 달을 내리 잠잔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날마다 수시로 먹고 자면서 하루를 이어간다. 더하여 말까지도 잊어가는 중이다. 아버지는 쉬운 손짓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려한다. 밥을 원할 때도 수저질을 손으로 시늉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날마다 보아도 그 모습이 마땅찮다. 

“천~천히 말씀을 하셔도 돼요.”

무엇을 원하는 지 뻔히 알지만 나는 모르는 척 딴 짓을 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목소리를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하루해가 저물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영영 말을 잊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럴수록 조급한 티를 내지 않으려 낯빛을 슬그머니 감춘다.

  아버지는 한 몸에 뇌졸중치매파킨슨병을 끌어안고 있다. 팔순이 넘어 발병하고 어느새 8년째다. 보행보조기를 앞세워야 비로소 한 발을 뗄 수 있을 만큼 근력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이라 걸을 때마다 허리춤의 고무줄이 슬그머니 내려앉을 지경이다. 

 그런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텔레비전 시청이다. 미국 레슬링 프로그램, 레슬 매니아를 밤낮없이 들여다보신다. 식사 후 간식을 눈앞에 줄지어 세워놓는다. 그리고선 리모콘을 누가 채 갈까 두려운지 한 손에 꼭 쥐고 계신다. 가끔 텔레비전에 대고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어이, 잘 했구만.” 

혼잣말을 하거나 흥겨운 나머지 열띤 박수를 보내기도 하셨다.

  그 모습이 이젠 보기 어려운 아버지의 옛 모습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거대한 변화는 엄마의 난데없는 여름감기가 시작이었다.

  얼마 전, 엄마 목소리가 여느 날과 달리 지나치게 쇳소리가  귀에 거슬리던 날 이후부터다. 엄마가 영락없이 여름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단골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나흘째 잡수셔도 도통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셨다. 밥 수저를 내려놓는가 싶으면 금방 스르르 잠 든 모습이 다시 보아도 낯설었다. 

 사실 엄마가 감기에 걸리기 전에는 같은 침대를 쓰던 부모님이셨다. 제일 먼저, 감기가 아버지에게 옮겨갈 것을 염려해 부모님의 생활공간을 나누었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엄마는 거실에서 따로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 결정이 아버지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거실에서 부모님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버지가 아예 침대에서 나오려 하지 않으니 덜컥 겁이 났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생활하면서 갑작스레 누워있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나 버린 것이다. 침대에 모로 누워서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은 완고함 그 자체다. 그렇게 즐겨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조차도 원치 않으시니 더욱 기이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안방침대에 누운 채 채널 몇 개만 나오는 작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을 자면서 꼬박 하루를 지내신다. 아버지가 물 컵이나 간식까지도 침대위에 갖다 놓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버지, 침대위에서 잡수시면 안돼요.” 단호하게 먹거리를 부엌이나 거실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엄마의 감기는 시간과 함께 나아갔지만 이미 몇 년 째 환자인 아버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뒷걸음질을 불러왔으니 어쩌겠는가.

 어떤 먹거리로 아버지를 꾀여 침대 밖으로 나오시게 만들지 궁리를 한다. 치매로 날마다 음식에 한없이 집착하는 아버지니까. 침대에서 아버지를 불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먹거리뿐이다.

  침대에서 스스로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 나와서 원하는 간식을 잡수시도록 끌어내야 한다. 자칫 여린 마음을 접고 단호한 태도로 응대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침대에 누워서 손닿은 대로 먹고 마시면서 그대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릴 것이 너무도 확실히 보이는 탓에.

어떤 이유로 인해 아버지의 평소 생활 패턴이 하루아침에  침대로 확 줄어들어버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여름감기를 몰고 온 엄마의 탓을 하고 싶은 마음도 어느 구석에 도사리고 있지만 허공에 침 뱉는 어리석은 짓인 줄 안다. 여름감기에 걸리고 싶은 사람도 없거니와 그 일로 아버지가 침대에서 누워만 있을 줄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여름의 끝자락, 무더위가 조금씩 꼬리를 감춘다. 시원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온다. 아버지의 여름잠도 끝나가려나 셈해본다. 시작과 끝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소망할 뿐이다. 그런 대로 기나긴 땡볕,  땀으로 세수하던 여름도 무던히 버티고 지나왔다.

 곰은 겨울잠을 준비하고 아버지의 여름잠은 가을이면 끝날 것인가.

너른 마당 앞, 몇 시인지 모르는 깊고 어리숙한 그 시간 보름달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여름이 지나듯 아버지의 여름잠도 여지없이 지나갈 것을 믿고 싶으니까. 그런 이유로 난생처음 가을을 애타게 불러본다. 더딘 적도 빠른 적도 없는 자연의 순환인 것을 훤히 알고도 괜히 자꾸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다. 가장 빠른 걸음의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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