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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퍼센트 Aug 24. 2024

맹물같은 친구에게

글밭 일기

  

 동그란 얼굴, 모나지 않은 성격에 목소리까지 가녀린 너는 음식도 가리는 것이 없지.

나는 너와 반대로 못 먹는 음식도 많고, 은근히 까다로운 편이고 말이야..

지난 번 네가 사는 아파트 근처 식당에 간 적이 생각이 나네.

네가 두 번째 방문이라 메뉴도 네가 먹어본 가정식 백반으로 결정했어.     

 막상 음식이 나오니 당황스러웠지.

맛없는 음식은 참아도 짠 음식을 참지 못하는 데 딱 짠맛이 느껴진 탓이야.

나는 너의 반응을 먼저 살펴보았어,

 “맛이 어떠니?”

나는 내 입맛이 혼자만 그런가 싶어서 넌즈시 물어보았어.

너는 높낮이 없이 부드러운 어조로 간단히 대답을 해 주었어.

 “응, 좀 짜네.”

미간을 찌푸린다거나 목소리에 작은 짜증이 묻어나는 게 하나 없이 말이야.

그런 너의 모습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너는 다시 한 번 국물을 숟가락에 반 스푼 떠서 살짝 맛을 보더라.

 “사장님, 여기요. 국물이 좀 짜네요. 뜨거운 물 한잔 갖다 주셔요.”

나는 네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

‘육수도 아니고 그냥 뜨거운 물 한잔?’

부엌에서 살림을 하는 우리잖아.

 식당 사장님은 미안한 내색도 없이 반질한 얼굴로 냉큼 뜨거운 물 한잔을 갖다 놓았어.

나는 나도 모르게 뱁새눈이 되어 사장님의 멀끔한 얼굴을 슬쩍 째려보았지.

‘어쩌면 미안한 기색도 없이 저럴  수가 있지?’

속으로 음식의 간도 못 맞추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못을 박고서 말이야.

너는 그때까지도 처음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온 표정 그대로 온화한 모습이었어.

너한테 불평을 말하자니 같이 오자고 한 너에게 미안할 듯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너는 탁자위에 놓인 뜨거운 물 한잔을 너의 국물 안에 절반쯤 쪼르륵 부어놓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물어보았어.

“어때? 너도 짜다고 했으니까 남은 물을 부어줄까?”

나는 너의 평온한 물음에 금방 대답을 하지 못했어.

“으~ 응? 아니야.”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네가 남긴 뜨거운 물을 국물에 붓지도 못하고 괜히 밑반찬만 들썩거리기만 하였어.

그래도 너랑 같이 마주 앉았으니 수저질을 멈출 수는 없고 먹는 시늉은 해야 하니까.

너는 뜨거운 물을 붓고 나서 수저로 국물을 한바탕 휘휘 젓더니만 수저 끝으로 국물을 살짝 떠서 맛을 보네.

내가 보기엔 늘어난 국물만 찰랑찰랑하고, 건더기는 몇 없어서 더욱 볼품없는 그 뚝배기를 너는 네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어.

“야! 이제 간이 딱 맞아. 맛있어”

나는 너의 환한 표정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야! 네가 돈 내고 밥 사 먹는 데, 뜨거운 물 한 잔 넣어서 간을 맞추니 맛이 있다고 좋아하냐! 쓸개 빠진 사람도 아니고 도대체 넌 뭐냐! 이 맹물 같은 친구야’

너에게 속에 담아둔 막말을 쏟아놓을까 두려워 일부러 내 입을 꾹 다물었어.

나도 배가 고프니 맨 밥에 밑반찬, 거기에 국물 건더기를 얹어서 허기를 때워버렸어.

그 사이 너는 여전히 만족스런 얼굴로 늘어난 국물을 꿀떡 꿀떡 떠먹었어.

나는 네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 보면서도 속으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지.

‘뭐지? 나만 나쁜 입맛에 더러운 성질인건가?’

못돼먹은 나의 입맛이 문제인가 싶더라.

너는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포만감이 가득한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았어. 

그제야  내가 국물을 전혀 떠먹지 않은 것을 본 너는 걱정스레 말을 건넸어.

“왜? 맛이 없어? 밥은 다 먹었는데 국물은 그대로네”

나는 대답이 궁색해서 갑자기 말도 더듬대면서 핑계 아닌 핑계를 찾아냈지.

“으~응, 아니야. 밥 한 공기 뚝딱 비웠잖아”

그나마 밥을 다 비웠으니 천만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야.

너는 내 말을 듣고 평화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빈 밥그릇을 쳐다보았지.

‘짜면 뜨거운 물 한잔 갖다 주는 그런 곳이’

또다시 진심담은 속엣 말이 튀어나오려 해서 물을 마시면서 튀어나오려는 불평의 소리를 막아보았어. 

어째서 좋은 친구와 밥을 먹었는데 도리어 허기가 들고 물배라도 채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하면서.

너와 식당에서 나오면서 나는 다신 저 식당에 갈 일은 없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보는데 너는 더 기막힌 이야기를 하네.

“지난 번 보다 훨씬 나아졌네. 음식 맛도 좋아졌고”

‘뭐? 처음은 도대체 얼마만큼 이상했던 거니?’ 

물어보고 싶어도 다시 가지 않을 테니 묻어두자 여기면서 너의 말을 흘려들었어.

 지금에야 털어놓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너는 순수한 얼굴로 이렇게 말 할 거 같아.

“아~, 그랬구나. 좀 짜면 물 부어서 먹으면 되니까.”

그래. 그렇지. 넌 그런 친구야. 그렇게 불평불만 없이 긍정으로 밝게 빛나는 네 얼굴이 나는 언제나 보기 좋으니까.     

너의 착한 입맛이 가끔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너를 아끼지.

여전히 음식은 여전히 진저리치게 싫은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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