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교사의 실내화
학생들은 수업하는 선생님이 정교사인지 기간제 교사인지 시간강사인지 잘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학생이었던 나에게 선생님은, 모두 그냥 선생님이었다. 몇 군데 학교에서 일주일씩 근무했을 때도 학생들은 "선생님은 몇 학년 선생님이에요?"라고 질문했었다. 같은 학교에서 다른 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라고 여겼다. 다른 선생님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시간강사 당사자인 나는 신경이 쓰였다. 학생이나 다른 교사들이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 뭔가 부족해 보이는 건 아닐까? 나를 소개할 때 교사라고 할까 강사라고 할까? 뭐 그런 것들이었다. 실내화도 그중 한 가지였다.
처음 기간제 교사로 학교에 간 날, 학교 현관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신발장에는 교직원 칸과 내빈용 칸이 따로 있었다. 교직원 대부분은 신발장에도 지정석이 있어서 각자의 실내화를 신었다. 또는 책상 밑에 실내화를 보관해 두고 신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딱히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내화도 없었다. 그냥 내빈용 글자가 찍힌 실내화를 신었다. 그 후로 몇 군데 학교에서 일주일씩 근무할 때도 해당 학교의 내빈용 실내화를 신었다.
처음엔 학교 자체에 적응하느라 실내화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내화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내 실내화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내빈용 신발장 문을 열 때면 주변에 누가 있는지 괜히 한번 둘러보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왜 내빈용 실내화를 신었어요?" 어, 그러네.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 앞에 머리가 멈췄다.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고작 실내화 하나로 내가 이렇게 당황하다니. 그래서 정말 싱겁게 "그냥. 이게 편하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실내화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걸까. 남들은 내 실내화를 보고 나에 대해 판단하는 걸까. 그저 나 스스로 실내화에 감정을 이입시켰던 건 아닐까.
얼마 후, 실내화를 한 켤레 샀다. 비록 신발장에 지정석은 없지만 내 전용 실내화는 생겼다. 내 실내화가 없을 때는 학교에 한시적으로 다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젠 좀 더 안정적인 기분이랄까. 만 원짜리 슬리퍼 한 켤레로 새로운 안정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