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한 것보다 과한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처음 학교라는 곳에 갔을 때는 모든 게 어색하고 또 헷갈렸다. 복도를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학생들이 인사할 때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급식실 앞에 길게 줄 서있는 학생들 틈에 어떻게 끼어서 급식실로 들어가야 할지. 교사들만 자율 배식을 하는 상황에서 특정 반찬은 어느 정도 덜어야 할지.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었으니,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동료 교사들은 물론, 급식실에서 배식해 주시는 분, 행정실에서 급여를 담당해 주시는 분, 인쇄실에서 복사를 해주시는 분, 정문에 계시는 안전지킴이 분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됐다. 그래서 실제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호칭을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몇 달쯤 지나고, 새로운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특정 선생님들을 부를 땐 '부장님'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교무부장, 학생부장, 진로부장 등 직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분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거나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선생님' 대신 '부장님'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도 젊은 부장 선생님께는 'O부장' 이렇게 불렀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봤다. 일관되게 모두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왔는데, 혹시 해당 부장 선생님께 결례가 되는 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부장교사인데, 막 들어온 시간강사가 나에게 그렇게 부른다면 기분이 상할까. 그럴 것 같기도 했고, 아닐 것 같기도 했다.
회사는 직급이 명확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부를 땐 자연스럽게 해당 직급을 붙인다. 다른 부서 직원과 협업이 필요해 연락을 하기 전, 그 사람의 직급을 확인한 후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썼다. 하필 내가 다녔던 회사에는 부장이라는 직급이 없어서 부장님이라는 말은 어색했다.
회사 내에는 직급이 다양하고 승진이 반복되다 보니 헷갈릴 때도 있다. 경험 상, 실제 직급보다 더 높게 불러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에 대해 잘 모르나 싶기도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내가 당연히 그 직급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헸다. 뭐 딱히 기분 나쁠 일은 아니기에, 애매할 땐 한 단계 높여서 부르라는 비즈니스 에티켓 팁도 있지 않은가.
반대로 실제 직급보다 낮춰서 부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7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그랬던 적은 없다. 결국, 사람의 호칭은 조금 더 과한 것이 덜한 것보다는 낫겠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부장 선생님들께는 반드시 부장님이라고 부르겠다고 마음도 먹었다. 그런데, 그분들과 대화할 일이 없었다. 마음먹은 후로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그 이름, 부장님.
퇴사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며 가끔 만나는 선배 한분이 있다. 나와 함께 근무할 당시, 해당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팀장을 맡으셨는데, 내가 퇴사한 후 업무조정과 인사이동을 거치면서 차장으로 직급이 바뀌셨다. 몇 년간 팀장님이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차장님이라고 부르려니 조금 민망했다. 난 더 이상 그 회사의 조직원도 아닌데 굳이 바뀐 직급으로 불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팀장님이라고 부른다. 조직 내에서 차장에게 팀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회사 밖에서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 내 휴대전화에도 팀장님으로 저장되어 있고, 앞으로도 쭉 팀장님으로 부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