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터득한 생존법
30개 학급, 전교생 700여 명, 교직원 70여 명.
제법 큰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초반, 가장 난감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인사였다.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사복을 많이 입고 다녔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더 많았지만, 겉옷이나 바지 등 튀지 않는 수준에서 사복을 입는 학생들이 꽤 있었고, 당시 학교에서는 크게 단속하지 않았다. 웬만한 고등학생의 덩치는 성인과 비슷했고, 두발 자유로 인해 머리모양으로도 구분이 어려웠다. 게다가 여학생들은 화장도 제법 하고 다녀서, 교사들의 정보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교내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학생인지 교사인지 헷갈렸다.
수업이 비던 시간, 옆 건물의 교무실 가는 길에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신규교사의 열정을 가득 담아 매우 공손하게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학생이었다. 그 학생이 스쳐 지나간 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날은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걸어오기에 학생인가 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는데 지나치면서 다른 교사임을 깨닫고 아뿔싸 했던 적도 있었다.
빨리 교사들의 얼굴을 익히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내 자리는 나 포함 세명의 교사가 근무하는 공간이었다. 본 교무실, 학년실 등 교사들의 공간이 여러 군데로 분리되어 있는 데다 같은 교과 교사들 외에는 특별히 교류할 일이 없어서 한동안 애먹었다.
고민 끝에 터득한 방법은 바로 미소를 띤 목례였다. 상대가 교사든 학생이든 관계없이 웃으며 목례를 하고 다녔다. 학생들에겐 웃으며 함께 인사해 주는 선생님이고, 교사들에게는 담백하게(?)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는 동료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근무 시작일이 비슷해 친해진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내가 터득한 나름을 비법을 그들과 공유하며 한바탕 웃었다. 요즘도 학교 내에선 목례를 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