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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이슬 Oct 24. 2024

OMR과 컴싸

모의고사 1

대학수학능력시험 D-27. 지역 모의고사 날.

약식으로 국어와 수학만 치른다. 감독 날인 같은 절차는 없다. 마지막 점검이다.


예비종이 울린다. 종소리 시작음이 울리기 무섭게, 1교시 시험감독을 맡은 교사들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 마냥 자리에서 신속하게 일어선다. 잰걸음으로 교무실을 나서며 속삭인다.


"애들은 아닌데 우리만 서두르는 거 아니겠죠?


밀봉된 시험지와 답안지 봉투를 안고 교실로 들어선다.


"맨 뒷줄 빈자리는 왜 비었죠?"

"..."

"원래 없는 자리인가요?"

"..."


누군가 인심 쓰듯 답했다.


"아직 안 온 것 같은데요."


무심한 그 대답이 너무 고마웠다. 약식이라 결시생 표기도 필요 없다. 그냥 시작하자.


답안지와 문제지를 배포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OMR을 받자마자 개인정보를 마킹한다. 문제지는 표지가 보이게 올려두고 종 치기를 기다린다. 고3이니까. D-27이니까. 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한 달 반 된 나에게도 이젠 익숙하다.


드르륵. 누가 교실문을 열었다. 가방을 메고 있다. 아까 그 빈자리에 앉는다. 시험 시작 전에 왔구나. 장하다. 

앉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교실 뒤 공용필기구함으로 간다. 뒤적거리다 볼펜 한 자루를 집어 들고 자리로 온다. OMR은 뭐다? 컴싸다! 볼펜으로 OMR을 작성하고 있다.


"컴싸 없어?"

"네, 없는데요."

"..."


나도 없다. 교실에 여분이 안 보인다. 


복도 끝에서부터 발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린다. 맞은편 복도에서 누가 소리친다.


"왔어? 잠 푹 잤네?"


상기된 듯한 3학년 담임선생님 목소리다.


"네."


왔다는 건지, 잠을 푹 잤다는 건지 모르겠다.


"잘했다. 이제 전부 다 왔네!"


결시생 없이 시험을 치르게 되어서인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밝았다.


열린 교실 문으로 복도의 대화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같이 듣고 있던 맨 앞줄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학교 온 걸로 칭찬받는 거지?"


내 질문에 맨 앞줄 학생은 대답 대신 씩 웃는다.


딩동댕. 시험 시작종이 울린다.


마침 3학년 선생님 한 분이 복도를 지나가신다.


"선생님, 학생이 컴싸가 없대요."

"누구요?"

"J요. 그래도 종 치기 전에는 왔어요."


감싸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 나왔다. 나보다 J를 더 잘 아시겠지. 싱긋 웃으며 J를 교실 밖으로 불러내신다. 잠시 후 J가 컴싸를 들고 들어왔다. 10분 후, J는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그 위에 엎드려 숙면을 취했다.


수능에 뜻이 없을 수도 있다. 모의고사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공간에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볼까 혼자 고민해 본다. 책임감이 좋을까 의무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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