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에게는 오지 않는 쪽지
친목회비를 내지 않았습니다
각자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일하던 교사들이 갑자기 술렁거린다.
이런 경우, 원인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하나는 내 모니터에도 뜬 쪽지. 다른 하나는 나에게는 오지 않은 쪽지.
메신저로 쪽지가 동시에 도착하면 내용에 따라 반응이 일순간 비슷하다.
예를 들어,
"3학년 단체 행사로 인해 오늘 5교시 수업이 결강되었습니다"
이런 쪽지가 오면, 5교시 수업 예정이던 선생님들이 여기저기서 '와' 하고 작게 환호한다.
"법정연수 이수증을 OO까지 제출해 주세요"
라는 쪽지가 오면, 분주해지면서 서로 수강했는지 묻거나 이미 들은 사람은 옆사람에게 조언을 건넨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수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면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나만 모를 땐 잠깐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내 수긍한다.
'정교사들만 해당되는 사항이구나. 기간제는 제외야.'
업무건 아니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나 끝까지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갑자기 교무실이 어수선해졌다.
"단합회를 1박으로 한다고?"
"당일이 더 좋은데"
"이거 누구 의견일까요?"
평소처럼 각자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한다.
내 모니터에는 내가 아까부터 띄워놓은 수업자료가 전부다. 나에게는 오지 않은 쪽지구나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며 혼자 추측했다.
교사들은 매년 단합회를 실시한다. 이번에는 1박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술자리가 싫은 사람들은 1박이 싫단다. 단합회는 친목회에 가입된 교사들 대상이다. 나는 친목회 회비를 낸 적이 없다. 나는 친목회 소속이 아니다. 단합회 대상도 아니다.
수업을 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선생님들 책상 위에 무언가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 책상에만 없었다. 저건 뭘까. 친목회에서 나눠주는건가. 왜 내건 없냐고 묻지 못했다.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혼자 추측하고 말았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로 근무할 때는 친목회에 가입당했고, 회비도 매달 냈다. 정년퇴임식 등의 행사를 겸해 전체 회식에 두어 번 참석했고, 교직원 대상으로 나눠주는 기념품이나 답례품을 받아도 제법 당당했다. 지금은 친목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회비도 내지 않는다. 교직원 신분이지만, 교직원 대부분이 가입된 친목회 회원은 아니다.
얼마 전, 신혼여행을 다녀온 한 선생님이 답례품을 돌리러 오셨다. 대화는 커녕, 서로 인사 한번 나눠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사실 결혼식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 다른 선생님들의 축하와 축의를 받으며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그분들께 감사인사를 하러 온 것이리라. 순간 멈칫했다. 축의한 사람 명단에는 내가 없는데, 답례품을 돌리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게 민망했다. 교무실 구석으로 이동해 자료 정리를 하며 순간을 모면해보고자 했다. 서로 어색하게 마주하는 일보다는 바쁜 척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뒤늦게 책상 위에 올려진 답례품을 발견했다. 민망했다. 친목회비라도 냈으면 이렇지 않을 텐데.
단합회를 1박으로 할지 당일로 할지 의견조사를 한단다. 내가 그 단합회의 대상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의견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물어보기도 민망하다.
친목회는 기간제 교사도 모두 포함해서 일 년 단위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다). 교사들이 매년 이동하기 때문에. 이번 달 급여공제 항목에 친목회비가 없었으니 미가입 상태겠지. 첫 기간제 때는 친목회장님과 행정실에서 친히 개별 연락을 줬다. 근무한지 한달이 훌쩍 넘어서. 친목회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먼저 연락이 와서 놀라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비교적 당당하게 환영받으며 친목회에 가입했고, 떳떳하게 친목회원의 권리를 누렸다. 나처럼 중간에 들어온 사람은 특별히 친목회장이 챙기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가입을 하기가 애매하다.
딱히 가입하고 싶은 의사는 없기에 아쉬움은 전혀 없다. 다만, 지금에 와서 친목회장 또는 누군가 가입을 독려한다면 거절할 수는 없겠지. 가입 여부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제안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현재는 친목회 미가입 상태로 선생님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