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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는 본래보다 훨씬 무거웠다.

소설 감성 #011

 그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 온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56분. 화요일. 학과 2학년생 전부 들어야만 하는 전공 필수 과목이 1교시에 있는 날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는 2학년이었다.



 그가 아침에 눈을 뜬 시간은 7시 27분이었다. 등교까지 넉넉했다. 15분 정도 뒹굴거리다 몸을 일으킨 그는 차갑디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았다. 물 한 방울 손으로 쓸자마자 전신의 솜털까지 짜릿해지는 끔찍한 기분에 바로 잠이 달아났다.


 머리칼을 털며 간단한 토스트를 만들어 문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5분. 충분. 집 앞을 나섰다. 아차, 가스벨브 안 잠궜구나. 가스벨브를 잠근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6분. 충분. 집 앞을 나섰다. 아차, 보일러 목욕 모드 안 껐구나. 집에 부모님이 없는 자유롭고 바쁜 오전이었다.



 그가 버스를 탄 것은 8시 18분경이었다. 그 버스가 학교까지 도착하는 것은 넉넉잡아 30분 ± 3분이었기에 최대값을 잡아도 51분. 캠퍼스까지 걸어서 8분이 걸리는 그로써는 여유를 부릴수 있는 시간대였다. 긴장의 끈을 놓은 그는 빈 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졸았다.




 언제나 그렇듯 오른쪽으로 커다랗게 커브를 도는 구간에서 그는 눈 떴다. 1년 반 이상 같은 버스를 탔더니 생긴 신기한 능력이었다. 커브를 돌자마자 정거장이 있고 다음 정거장이 바로 학교였다. 버스의 뒷문이 두 번째 열릴 때 안전하게 내리면 되었다.



 버스의 문이 첫번째 열렸다. 앞 문으로 연세가 지긋하신, 허나 아직 검정 머리가 더 많으신 아주머니께서 탑승했다. 인상이 좋으신 아주머니는 버스에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걸 보곤 주위를 둘러보다 성큼성큼 걸어 그의 앞에 섰다. 어느덧 버스는 두번째 문이 열릴 정거장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미리 뒷문에 서있을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실패했다. 일어서려는 그의 어깨를 아주머니가 눌렀기 때문. 무슨 영문인지 고개를 든 그의 눈에 인자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보였다.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말했다. 


 "학생. 양보해줄 필요 없어요. 그냥 앉아있어요." 


 여기가 내릴 곳이어서 일어나려고 한다고 얘기를 하면 되지만, 그러면 아주머니가 망신스러울 것 같았다. 어쩌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아, 네. 감사합니다." 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본인이 내릴 정거장보다 네 정거장이나 지나친 정거장에서 내렸다. 아주머니와 간단한 목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서 내린 그는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56분. 화요일. 학과 2학년생 전부 들어야만 하는 전공 필수 과목이 1교시에 있는 날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는 2학년이었다. 원래는 걸어서 8분이 걸리는 강의실까지의 거리가 뛰어도 21분이 걸리는 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착한건지, 아니면 사실 바보인데 착한거라고 자기합리를 하고 있는건지 자조하며 헐래벌떡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착한지 바보인지를 떠나 그의 칭호는 '지각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배려란 맥락의 영향을 받는 놈이라 내 식대로 생각하고 하다보면 오히려 무례한 놈이 되어 있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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