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의 유령
서문
학교라는 꿈의 크기에 비하면 사회는 작은, 좁은 생업의 세계에 불과하다. 가장 큰 나로부터 떨어져나와 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본분에 맞는 직장에서 먹고사는 일에 눈치를 보다 젊음을 허송하는가 하면, 처음 학교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직장에서 은퇴하는 그날까지 하나씩 둘씩 거기서 품었던 원대한 꿈을, 이상은 접는다.
하여, 그와 동시에 희망도 바닥나 버렸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종 그때를 꿈꾸는 걸 보면, 아니면 다른 꿈을 찾아 헤매는 걸 보면, 또는 은퇴한 뒤에 지금껏 꿈꿔 왔던 이상을 버리거나 떠나지 못하는 걸 보면 이는 자명해진다.
학창시절에 품었던 큰 꿈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사회를 겪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희망을 접는다. 생각지 않은 생활고로 인해 절망에 허덕이는가 하면, 예기치 못한 병마로 깊은 시름에 빠져들기도 하며, 또는 이와 같은 불운을 삶의 방편으로 자포자기 속에서 마냥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가슴속에 더이상 배움의 열망이 불타오르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나마 큰 꿈이 있었다. 삶의 아쉬운 정경들이 분분히 떠오르는 것도 돌이켜 보면 그런 애물단지 같은 이유에서였다. 방금 창밖으로 달아난 것 같은 과거의 풍경들과 이를 지켜보는 응대하지 않는 미래에의 시선들에 휩쓸려...
따라서, 졸업이나 은퇴 이후의 생활을 단지 이 사회의 탓만으로 돌려 버릴 일은 아니었다. 거나하게 취해서 세상을 어물쩍 그리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가도 남은 삶을 도시에서 죽을 것이냐 하면 그도 아니고 - 시골에서 살 것이냐 해도 그도 아니라 - 우리들 삶에 고상한 선택지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게나마 생각을 바꾸면 역설적으로 이 사회는 비관적이다. 서로 기대어야 등질 수 있고 서로 맞대어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그 반대로, 서로 등져야 살 수 있고 서로 마주해도 기대일 수 없는, 학교라는 큰 사회에서 꿈꾸었으나 - 염몽에 시달리는 - 사회라는 작은 학교... 어른들의 억척스런 현실과도 같이, 이는 함부로 꿈꾸거나 찾지는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2025. 12월
[작은 학교의 유령]
은퇴를 앞둔 교정은 묘하게 낯설었다.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오래된 일기장 속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대한 꿈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가 꿈꾸었던 '학교'라는 세계는 우주만큼 넓었으나, 그 문을 나서 마주한 '사회'는 고작 한 끼의 생업을 걱정해야 하는 비좁은 골목길에 불과했다.
나는 그 좁은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컸던 '나'로부터 조각조각 떨어져 나왔다. 가정을 이루고, 본분에 맞지도 않는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젊음을 허송했다. 학교에 발을 들여놓던 날 품었던 찬란한 이상들은, 퇴직을 앞둔 오늘에 이르러 하나씩 둘씩 접혀 서랍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이상(理想)을 접는다는 것은, 곧 희망이 바닥난다는 뜻과 같았다. 졸업 후에도 우리가 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의 꿈을 추억하는 건, 어쩌면 사회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활고는 발목을 잡고, 예기치 못한 병마는 영혼을 갉아먹었다. 불운을 삶의 방편으로 삼아 자포자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내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돈도 건강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를새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 그 뜨거운 불꽃이 사그라진 것이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
거나하게 취해 세상 탓을 하며 어물쩍 살아온 날들이 창밖으로 달아나는 과거의 풍경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남은 삶을 도시에서 마감할 것인가, 혹은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벗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금 무력해졌다. 우리에게 그런 고상한 선택지 따위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회를 탓하기엔 나의 게으름이 컸고, 나를 탓하기엔 이 사회가 너무나 비관적이었다. 학교라는 큰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 기대어야 등질 수 있다'고 배웠지만, 정작 사회라는 작은 학교에서 우리가 배운 생존법은 '서로 등져야만 살 수 있다'는 비릿한 법칙이었다. 마주 보아도 기댈 곳 없는 이 황량한 교실.
결국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해 꿈을 버린 것이 아니라, 꿈을 버렸기에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함부로 꿈꾸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대가는 이토록 시리고 무거웠다.
나는 마지막 짐을 꾸려 정문을 나섰다. 등 뒤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염몽(艶夢)처럼 아련했다. 이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이 거대하고도 좁은 '작은 학교'의 다음 수업을 향해 걸어간다. 배움의 열망은 꺼졌으나, 살아내야 한다는 억척스러운 의무만이 낡은 가방 속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