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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_까치를 읽고...

by 책수다 왕언니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p. 556 중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5년간 3부작으로 출간된 책을,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제목으로 합본하여 출판하였다. 1부 비밀노트에서 독자는 전쟁의 참상속에서 쌍둥이 형제가 비인간화 되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2부 타인의 증거에서 쌍둥이 형제 중 한명은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자는 여러 인물과 관계를 맺지만, 홀로 남겨진 외로움에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린다. 3부 50년간의 고독에서는 1부와 2부에서 진실처럼 보였던 이야기들이 왜곡된다. 그래서 형제의 관계와 존재 자체마저 의심스럽게 그려진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당혹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작가는 "애초에 둘이 존재 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 소설은 극단적으로 건조하고 단순한 문체로 쓰여 졌다. 우리에게는 낯선 제3국가 출신 작가의 이 소설을 나는 두 번 읽었다. 칠 년 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가는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후 스위스로 이주했고 이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워서 쓰다 보니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체는 작가의 개성이 될 만큼 독특하고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존재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허구 일 수 있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도 과연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허구를 믿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에 허를 찌르게 만드는 소설이다.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끝까지 읽고, 결말을 확인하면 내가 읽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짜인가?라는 의심을 들게 한다.


저자는 '나는 나의 기억이다'라는 명제가 참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도 던진다. 자아라는 개념이 과거의 기억과 경험으로 완성된다면, 이는 완벽한 자아의 배신이다. 나라는 존재자체가 흔들린다.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되며, 언어로 기록된다 할지라도 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나는 누구일까?존재의 부정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완벽한 철학적 소설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다.


불교의 금강경에서는 '무아'를 강조한다. '나'라는 실체는 없다고 말한다. 나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요소들과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연기라는 개념이다.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작가의 의도는 꽤 같은 방향을 향한다. 소설에서 클라우스와 루카스의 기억이 바뀌면서 그들의 정체성도 변한다. 그러니 그들의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조작된 기억과 현실사이에서 뒤틀리고 뒤섞인 쌍둥이 형제의 정체성은 그들의 존재는 누구이고, 진짜 누구인가?라는 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아처럼,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허구와 진실사이의 방황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은 나의 자아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중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소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성적 표현 때문에 청년들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주제를 놓치기 쉬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문학적 역량이 뛰어난 젊은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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