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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Jun 15. 2024

이런 사람들이 해외 생활 잘합니다

언어 실력, 외향적 성격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

내 주변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자리 잡고 멋지게 사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과는 이야기 몇 마디만 나누어도 금세 공감대가 형성되고 친해지게 된다. 서로 성격이나 성향은 달라도 많은 가치관들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 그들만의 공통의 DNA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켜보면서 깨달은 '해외 생활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크게 다섯 가지로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정답은 없지만,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체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

해외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다. 추석, 설날 등 큰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되고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점점 연락이 뜸해지게 된다. 경조사가 생겨도 메시지로 밖에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 그게 1년, 2년, 수년이 지나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와 멀어짐을 느낀다. 그렇다고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 완전히 속한 것도 아니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때마다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건강하게 해결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들이다. 혼자서 잘 지낸다는 뜻은 단순히 '집돌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내 마음속을 먼저 들여다볼 줄 안다는 것이다. 혼자서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 밖을 두리번 거린다. 예를 들면, 늘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하거나 쉴 새 없이 연애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단순히 외롭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에 의존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정의는 각자 성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 핵심은,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겨도 제자리로 금방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나 자신과의 신뢰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 일어나도 그 회복 속도가 빠르다.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그 감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거창한 것 필요 없이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일을 하면 된다. 나에겐 좋아하는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본다거나 답답함을 풀어내고 싶을 땐 글을 쓰곤 한다. 만약 해외에 나와 살고 싶은데 혼자 보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그 연습부터 꾸준히 하는 것을 추천한다.


감정 동요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외국에서 살다 보면 여러 가지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곤 한다. 행복한 순간들도 많지만 이방인으로서 겪는 외로움, 문화차이에서 오는 답답함, 가끔은 절망감 등 모국에서 겪지 못했던 감정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감정적이지 않고 매사 덤덤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 동요를 겪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꽤나 감정적인 사람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1초 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하루에도 기분이 수십 번 왔다 갔다 하곤 한다. 회사에서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퇴사하겠다며 다짐을 해도,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지곤 한다. 나는 사실 내가 감정적인 사람임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외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 이유는 그 감정적 소용돌이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 몫하는 것 같다. 가끔 불같이 화가 날 때도, '아 지금 많이 화가 났구나. 나중에 맛있는 것 먹고 잊어야지'식의 생각으로 넘기는 편이다. 신기하게도 여기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편인데도 그 잔상이 오래가지 않는다. 생각과 감정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 늘어지더라도 그걸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는 힘, 내 감정에 매번 휩쓸려가기보다는 잠깐 멈추어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기준이 뚜렷한 사람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에게 민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 덕에 나의 선호나 취향쯤은 상대를 위해 쉽게 희생하곤 한다. 영국에 살다 보니 이 성향이 타국 살이와 겹쳐져 자칫하면 타인에게 휘둘려 나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생활은 '예전의 나'와 '새로운 나'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작게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부터, 궁극적으로는 내가 어떤 가치관을 따르고 추구하는지, 단순히 국적에 따른 정체성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서를 써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쉽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싫어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바운더리(Boundary)'라고 부르는데, 이 바운더리는 나를 보호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바운더리는 무엇보다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히 연애 상대를 만날 때 그 빛을 발한다. (바운더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특집으로 써보도록 하겠다.) 나만의 신념과 기준이 확실한 사람은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혼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그 선을 넘는 순간, 그것을 지적하고 거절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용기까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바운더리를 존중받게 된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 대해서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매일 생겨난다. 내가 그동안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아니었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용인되는 경우들이 정말 많다. 그 간극에서 결국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취해야 할지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에 맞는 나의 기준, 바운더리를 공고히 세워야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해외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나의 바운더리와 기준을 확실히 정한다 하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또 엄연히 다른 문제다. '틀린 것'과 '다른 것'에 대한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영국에는 정말 다양한 사랑의 형태들이 존재한다. 한 번은 친구가 조심스럽게, 자기는 파트너와 '오픈 릴레이션십'을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파트너가 있으나 합의 하에 서로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는 관계라고 했다. 그동안 지극히 평범한 커플인 줄 알았던 친구들이라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땐 꽤 충격이었지만, 그 방식이 둘 사이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는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니 '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아마 너희들을 100%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서로 동의를 했고, 둘의 관계가 더 행복하다면 너희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나는 철저히 일부일처제를 지지하고 바람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다른 방식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 동료 중에 한 명은 아이 둘의 아빠인데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동성인 파트너와 최근에 딸을 입양했다. 두 커플 모두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일부 사람들에게 손가락 질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그냥 수많은 가족 형태 중에 하나로 존중받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기서 핵심은 "You do you" (너 하고 싶은 대로, 좋을 대로 해라)의 마음가짐이다. 내 가치관은 공고히 하면서도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고 존중하는 것. (물론 폭력, 살인 등의 명백한 범법행위는 당연히 예외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더불어서 잘 살기 위해서는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장 욕구가 있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해외로 나가지만, 현실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첫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어쩌면 고난과 시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을 성장의 기회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저 늘 견뎌야 하는 가시밭길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이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국에 온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취직을 하기 위해 매일 맨땅에 헤딩해야 했고, 불확실한 미래와 희망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순간이 지나면 내가 엄청나게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지금의 나는, 2년 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고 성숙해졌다. 내가 그 6개월을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생각했다면 아마 한국으로 진작에 돌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런던에서 일을 시작 한 지 2년이 된 지금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래도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이미 현지에서 멋지게 자리 잡고 살고 있음에도 안주하지 않는다. 퇴근 후 따로 공부를 한다거나, 자신의 전문성으로 살려 프리랜서나 사업을 준비하거나, 또 그 와중에 글을 쓰고 유튜브를 통해 삶을 공유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파트타임 대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해외 생활이 단지 즐겁고 행복하고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해외 생활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의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열린 마음, 융통성, 적응력, 회복 탄력성 등 정말 중요한 가치들이 많지만 당연하기도 하고 겹치는 내용이 많아 따로 나열하지 않았다. 보통 해외 생활을 잘하는 성격으로 '외향적인 성향'을 꼽는데 나는 내향인이거나 외향인 이거 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내향인에 가까운 사람인데 이미 성격과는 정 반대의 세일즈 일을 하고 있고 살아가는 데도 전혀 큰 지장은 없다. 물론 좀 더 외향적인 성향이었다면 회사에서 하는 업무가 좀 더 편했거나 친구의 숫자가 더 많았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지금 생활에 정말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글쎄'이다. 내향인이건, 외향인이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잘 지내면 그만이다. 내가 내향인이라 고민이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아직 3년 차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 런더너라 여전히 신기한 일들이 많고, 때로는 훅 찾아오는 외로움에 울기도 많이 운다. 특히 직장 생활하면서 매일 마주하는 나의 한계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온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30대에 영국에 와서 비로소 나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여기가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신기하다. 마치 이제야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랄까? 나에게 잘 맞는 나라와 도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언급된 다섯 가지가 마치 나의 이야기 같다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꼭 지금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도전해 보길 바란다. 단언컨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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