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을까?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 에필로그

by 다둥이아빠

어릴 적 아버지와의 관계는 '따뜻했다'거나 '정이 넘쳤다'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심하게 갈등이 있지도 않은, 그저 각자의 공간, 각자의 시간에 머물렀다.

어쩌면 '무관심'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도.


살갑지 않았고, 단답형으로 주로 오가는 무뚝뚝한 말들.

대화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일방적인 말들에 가까웠다.


나의 사춘기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 열심히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는 그런 아이였다.

가끔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반항을 하다가 집으로 전화가 오면, 어머니는 속상해하며 길게 타이르거나 야단을 치셨지만, 아버지는 대개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셨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철들면 괜찮겠지."


한편으로는 저 말들이 서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 관심이 없으신가' 싶었다.

아버지에겐 자녀의 문제보다 본인의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거나, 무관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찾으려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특별했던 날들이 있다.

시험 기간에 성적표를 받아온 날,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나에게.

"먹고 싶은 건 없냐?"라고 물으셨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중국집 하면 짜장면보다는 짬뽕을 먹는 걸 좋아했다.


낡은 동네 중국집에 가서 짬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아버지와 앉아 있던 시간.

"맛있나?"라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고, 면만 후루룩 건져 먹던 그 순간들이, 아버지와 나, 둘만이 보낸 몇 안 되는 시간의 조각들이다.


그때도 아버지는 딱히 칭찬의 말을 길게 늘어놓지는 않으셨다.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하셨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에겐 큰 격려나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 아이를 키우는 지금, 그때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내 맘 같지 않아 속이 터지고, 형제들끼리 다투고, 언제 철이 들까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라면 "애들이 다 그렇지", "철들면 괜찮아진다"라고 하셨을까?

무관심이라 생각했던 말들이 달리 들린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 아이들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기다리고, 믿어주면 결국 제 길을 찾아갈 거라는 것을.

수많은 아이들을 먼저 겪어본 인생 선배로서, 아이들을 보며 답답해하는 나를 향해 건네는 담담한 기다림의 말들을 미리 해두신 건 아닐까.


짬뽕을 먹을 때 물어보시던 말들. 살갑진 않았고, 감정 표현 대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던 아버지 나름의 방식.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나 역시 말로는 표현 못 할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 본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거나 따뜻하진 않다.

진공상태처럼 공백이 있고, 때로는 쓸쓸했던 풍경에 가깝다.


하지만 그때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우는 지금의 나에게 이따금 말을 걸어온다.

무관심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 기다림과 침묵.

아버지가 배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조금씩 다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