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창작자
‘디깅’에 관련해 함께 글을 써 보자는 플레이의 제안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던 이유. 내게는 ’디깅=덕질‘이니까. 내게 덕질은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일, 꽤나 자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질문을 받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넌 요즘 뭘 디깅해?”. 분명 뭔가를 매일 좋아하고 찾아보고 있지만 ‘수집‘의 관점에서 사실 내 수중에 물성으로 두고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동안 난 무엇을 디깅 한 거지?’
손에 잡히진 않지만 분명 내 삶의 일부가 된 것들이 있다. 내가 ‘디깅 한다 ‘고 여겼던 것들의 공통점에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영화가 좋으면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작가를 찾아보고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도장을 깨 나가듯 전작들을 섭렵한다. 어떤 옷이든 가구든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그 브랜드의 역사나 디자이너의 가치관 등을 찾아본다. “난 이런 정보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야. “ 라며 속으로 지적 허영심을 뽐내기 위함도 있지만 이런 행동들의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좋아서’. 목적도 의도도 없이 시간을 쏟는 일이라 한 번씩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내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일탈, 내 도파민. 그래서 이번 화에서는 대놓고 덕밍아웃하고 신명하게 덕질 얘기를 하겠다. 머글들은 자주 물음표를 띄울지도 모르겠지만 알 게 뭐야, 내가 신나는데.
’덕질‘이라고 한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덕질의 정의나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하다. 고로 덕질에 정답은 없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근간으로 그에 관한 정보를 탐색하면서 유형의 물질이나 무형의 콘텐츠 등을 수집하고 창작함으로써 가지를 늘려 나가는 것. 내게 덕질은 나무를 기르는 일과 같다. 넘치는 애정으로 단 시간에 대목으로 길러 낸 나무가 있는가 하면, 그리 크진 않지만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온 나무도 있다. 전자는 수령 8년 된 ‘방탄소년단 나무’, 후자는 수령 19년 정도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나무‘다. 이 밖에도 좋아하는 게 참 많아서 여기저기 심어 놓은 나무가 많은데 더디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잘 살피지 않아 이미 메마른 나무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두 나무만큼은 현재 진행형으로 잘 가꾸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될성부른 덕후는 떡잎부터 달랐다. 피아노를 오래 배운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집에서 종종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절대 음각으로 TV에서 나오는 노래들을 바로바로 따라 쳤다. 신승훈, 안재욱 등의 발라드 노래를 자주 연주했고 윤상이나 김현철, 홍경민 같은 가수의 콘서트도 다녔다. 어린 나에게 엄마의 밤 외출은 흔치 않았기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엄마의 음악 사랑을 닮은 건지 아주 어릴 때부터 TV 속 가수들을 좋아했다. 열 살 때 처음 핑클 언니들에게 ‘팬레터’라는 걸 써 보고, 이성에 눈을 뜬 뒤로는 god를 쫓아다니며 방송국 앞에서 하염없이 오빠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중2병이 오면서 록에 빠져 크라잉넛이나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갑자기 힙합에도 매료돼 에픽하이의 CD를 사 모았다. 영국 모던 록이나 J-POP도 접하면서 장르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공고히 쌓아갔다. 그런 와중에 새로 컴백하거나 데뷔하는 아이돌들의 음악도 놓치지 않고 꿰고 있었으니 지금이나 그때나 음악만큼은 편식하지 않았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된 편이라 가수를 꿈꾼 적은 없고 ‘이렇게 평범한 인간도 밴드의 일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주 잠시 기타를 배운 적은 있다. 연주자야말로 엄청난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걸 금세 깨닫고 바로 포기했지만. 다양한 음악을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인지 주변에서는 ‘음악을 잘 아는 친구’로 통했다. 또래 친구들이 클럽에 다닐 때 록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를 찾아다녔으니, 음악에 꽤나 마니악한 사람으로 보였던 듯싶다. 그런 내가 방탄소년단의 팬이 됐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또 한 번 ‘너 참 특이하다’라는 표정을 보였다. 당시 내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었으니 친구들의 그런 표정이 납득되기도 했다. 난 그저 평소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만났을 뿐인데.
어른이 되고 하는 덕질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 같았다. 이제는 엄마의 허락도, 학교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니 한풀이를 하듯 덕생은 멈출 줄 몰랐다. 내 덕질 루틴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덕통 사고가 난 후 일단 유튜브나 SNS 등을 탐색하면서 가수의 정보와 영상 콘텐츠를 섭렵한다. 특히 아이돌은 양질의 콘텐츠가 방대하다. 각종 음악 방송의 무대를 비롯해 예능이나 기타 방송 출연, 기획사에서 직접 만드는 자체 제작 콘텐츠(브이로그, 자체 예능, 활동 비하인드 영상 등)에 실시간으로 팬과 소통하는 라이브 영상까지. 덕질 초기에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돈 한 푼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넘쳐난다.
다음 단계에서는 지갑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 내 가수가 새로운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하면 CD를 시작으로 앨범 관련 굿즈나 온라인 유료 콘텐츠가 쏟아진다. 요즘은 컴백 시기에 맞춰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이 대세. 이 팝업 스토어에서는 듣는 음악을 넘어 직접 보고 체험하고 구입까지 하는 소비문화로 연결된다. 이 수준의 덕질을 즐기려면 집밖으로 나와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오프를 뛴다‘는 용어가 있는데 온라인으로만 즐기는 덕질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덕질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말한 팝업 스토어 방문을 비롯해 공개 방송이나 팬사인회 참여, 생일 카페 방문 등도 그에 해당된다. 어릴 때 저런 건 다 돈 벌기 위한 상술이라고 들었는데, 아이돌 덕후가 되어서 보니 그들이 결코 허투루 버는 돈은 없었다. 잠시나마 악기를 배워 본 입장에서 아이돌은 흡사 제 몸이 악기 같다. 악기는 노력과 실력이 정비례한다. 무대 위 칼군무도, 카메라 앞에서 늘 웃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되는 자기 관리도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누군가의 노력을 손에 넣는 건 단순히 예쁜 물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또 나를 열심히 일하게 하는 동기 부여도 된다. 덕질은 내돈내산해야 기분이 좋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덕질의 종착지는 바로 콘서트.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눈과 귀로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모든 덕후의 꿈이 아닐까.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는 특히 표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한 해의 운을 다 끌어 써도 될까 말까. 지금까지 운 좋게 티켓팅에 여러 번 성공했고 추첨제 콘서트에 당첨된 적도 있다. 그동안 내가 여기에 끌어 쓴 운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면서 로또 맞을 일은 없겠다 싶을 정도. 그만큼 최애 가수의 콘서트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매일 이어폰으로만 듣던 노래가 내 귀를 타고 심장으로 내리 꽂히던 순간. 스마트폰 화면에만 있는 줄 알았던 나와 같은 수많은 팬들이 같은 노래로 호흡하는 순간. 공연장 안이 마치 전혀 다른 우주 공간으로 바뀐다. 무대 위 가수도, 객석에 있는 수 만 명의 팬들도, 모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그렇게 인류애를 충전하고 오면 한동안은 그 힘으로 혐생을 살아내 간다. “방탄소년단이 왜 좋냐?”라고 물으면 여전히 한 가지 답을 고를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에게 이런 멋진 순간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팬들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지나온 어두운 시간들, 끝없는 노력들, 여전히 감내하고 있을 희생들을 기꺼이 감수하며 오직 사랑과 희망만 주니까. 노랫말을 러브레터 삼아 얼굴도 존재도 모를 나를 사랑한다고 해주는데 나 자신도 나를 사랑해 주자고 결심했다. 누군가에겐 허상이고 공상에 지나지 않는 얘기일 수 있지만 분명 나는 새로운 모양의 사랑을 보았다. 덕질은 사랑할수록 재고 따지고 쪼잔해지는 현실에서의 나와 다르게 사랑할수록 충만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내 음악 사랑의 뿌리가 엄마라면 아빠로부터는 영화 사랑을 물려받았다. 어릴 적 아빠와의 추억을 꼽자면 영화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생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쥬만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면 아빠 품으로 파고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케이블 방송이 번성하던 때라 아빠는 늘 OCN이나 캐치온 같은 영화 채널을 틀어 놨고 저녁 시간이면 자연스럽게 아빠와 영화를 볼 때가 많았다. 이미 수령 30년은 됐을 법한 ‘영화 나무’의 식집사였던 아빠는 영화의 스토리는 물론 감독과 출연 배우까지 설명해 주느라 무척 신나 보였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 외워서 아빠에게 칭찬받았던 날은 내 어린 시절에 손꼽는 행복한 추억 중 하나다.
매주 화요일이면 집 우편함에는 영화 잡지 <씨네 21>이 꽂혀 있었다. 아빠 퇴근 전 먼저 뜯어서 이번 호 표지는 누구인지, 이번 주 개봉 영화들은 뭐가 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씨네 21>은 어린 시절의 영화에 대한 향수이자 잡지라는 매체를 꿈꾸게 한 존재. 신문 읽는 건 그다지 재미가 없었는데 잡지 속 기사들은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인데도 양질의 리뷰를 읽는 것만으로 그 영화가 좋아지기도 했고, 배우나 감독의 인터뷰를 읽으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눈을 떴다. 많은 평론과 인터뷰를 접한 영향인지 어느샌가 영화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메타포를 찾고 장면을 분석하고 메시지를 해석하려고 했다.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라는 책도 있듯이, 영화는 끝났지만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에 끌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내게 꼭 그랬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2005년 <아무도 모른다>. 영화 개봉 즈음에 감독은 “구상으로부터 완성까지 16년이 걸렸다. 이 이야기에 대한 여행이 곧 끝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여행이 영화를 본 관객의 마음에서 다시 이어져 적어도 내게는 현재 진행 중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다시 본다. 나만의 덕질 방법이랄까. 시간이 지나 다시 볼 때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많은 영화를 섭렵하기보다는 한 가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한다. 쓰다 보니까 음악 취향과는 반대로 영화는 편식하네. 19년 전 처음 본 <아무도 모른다>는 2~3년 주기로 다시 꺼내 보고 있는데 부모가 되어 본 영화는 더 각별했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건 주름살만이 아닌 듯. 영화에 대한 견해도 조금은 깊어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최근 개봉한 <괴물>까지 앞으로 1년, 5년, 10년 뒤 다시 보면 어떤 새로운 울림이 있을까.
며칠 전 영화 <괴물>의 국내 흥행에 힘입어 고레에다 감독이 내한했다. 운 좋게 GV 티켓을 구해 3번째 관람을 하러 가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저번에 두 번이나 본 그 영화 아냐?”하고 이해 못 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날 관람석에는 <괴물>을 5번, 10번, 14번이나 본 그야말로 ‘괴친자’들이 많았다. 3회 차 관람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 <괴물>은 특히 최단기간에 가장 여러 번 본 영화인데 각 회차마다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보통 영화를 볼 때 최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보려고 하는 편이라 <괴물> 1회 차 때도 자세한 의미 해석보다는 줄거리의 큰 흐름을 따라갔다. 역시나 1회 차 때는 영화가 끝나면 머릿속의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래서 2회 차를 볼 때는 1회 차 때 놓친 부분 위주로 장면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본다. 3회 차 때는 다시 눈을 좀 풀고 어깨에 힘도 뺀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애써 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저절로 깨닫는 것도 있고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테다. 그렇게 평생 옆에 두고 인생이 지루할 때마다 야금야금 꺼내 먹어야지.
영화감독의 덕질은 아이돌 덕질과 다르게 떡밥이 많이 없다. 감독의 영화를 사골처럼 여러 번 우려먹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덕질은 다양한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 고레에다 감독은 에세이도 많이 쓰는 편이고 국내 팬 층도 두터워 번역서가 적지 않다. 덕후에게 그저 감사한 일. 그 외에는 일본 현지의 지면 인터뷰나 방송 인터뷰 등도 찾아보고 있다. 일본어 배우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도 곁들이며. 앞서 말한 GV는 덕후에게 정말 꿈같은 기회. ‘어떤 질문을 드릴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지만 막상 영화관에서는 손 한번 못 드는 나란 내향형 인간. 혹시 사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15년 전 일본 중고 서점에서 구한 <아무도 모른다> 초판 DVD도 챙겨갔지만, 역시나 가방에서 꺼낼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방송이나 지면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는, 답변을 신중히 고르던 감독의 고뇌하는 모습이나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 수만큼 존재하는 다양한 감상까지 접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를 새삼 실감하며. 이렇게 또 한 번 나의 덕질 나무에 물을 주었다. 단, 너무 물만 주면 과습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건강한 덕질을 위해 적절한 환기는 필수. 현생을 잘 살아내는 것 또한 덕생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다. 오늘도 덕생과 현생을 오가며, 본캐와 부캐를 넘나들며 소소한 일탈을 즐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덕후가 천직인 걸!
매주 목요일 발행
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