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단편영화 리뷰 - 방문

<방문>(2016) - 질투나는 '델 토로'식 스릴러


나는 리뷰 글들에서 자주 미쟝센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었다. 영화가 대표적인 시청각적 매체이자 종합 예술이라는 점에서, 또 개인적으로 시청각적인 매체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미술과 조명, 촬영과 사운드의 조합에 과도하게 집착해 왔다. 그런 점에서 거장으로서 예감을 갖게 만드는 충격적인, 그만큼 사랑에 빠지게 된 단편들을 접해왔었다. 여기 그 새로운 목록에 <방문>이 들어온다. 


핀 오르간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혼란스러운 편집의 어두운 영상의 묵직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보는 순간 헐리우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영화 분위기의 그의 영화들과 매우 닮았다. 그림자가 짙게 든 어두컴컴한 조명, 무채색의 피부색 톤, 그에 비해 다채로운 배경 컬러들, 고딕 풍과 클래식 풍이 뒤섞인 세트 디자인, 어둠과 유아적인 미적 요소가 불협화음처럼 뒤섞인 동화같은 분위기, 그 분위기의 공간과 공포영화 식 연출을 통한 현실과 초현실 간의 붕괴점, 그리고 징그러운 요소들...... <크로노스>부터 <헬보이>, <판의 미로>와 <크림슨 픽>까지 이어져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잠깐 일으켰다. 심지어 영화의 내용도 어떻게 보면 역시 델 토로가 제작을 한 <마마>나 <돈 비 어프레이드 다크>와 유사하다. 여기에 감독은 현재 대한민국 현실에서 화두로 떠오른 아동학대와 이를 책임지는 아동보호 기관 직원, 그리고 학대를 통한 폭력의 되물림 문제를 얹어 얘기한다.  



한 아동 학대 사례 전화를 받은 아동 보호 기관 직원 동원은 아이들이 사는 동화같은 분위기의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주무신다며 조용히 들어오라는 신고자 아이인 영수의 말에 조심스레 들어 간 동원은 다양한 컬러와 앤티크한 장식품의 집 안 인테리어를 보게 된다. 어둡고 기묘 하긴 하지만, 이렇게 동화적인 곳에서 아이들이 학대 당한다는 걸 쉽게 상상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영수가 곧 엄마의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이야기 하는 것 마저 불안정함을 보이던 끝에 함께 불안해보이던 여동생 영희의 등장과 함께 긴장이 고조되어 간다. 

잠시 이웃집의 의견을 물으러 간 동원은 한번은 영희가 울다 밤 9시 갑자기 울음을 멈췄다는 별 단서가 될 만하지 않은 이야기만 얻고 만다. 곧 다시 집 안에서 그림을 그리던 영희와 재회한 동원은 빨간색으로 기괴하게 그려진 엄마에서 시작해 행복한 가정부터 죽은 것으로 묘사된 아빠, 그의 장례식에서 웃고 있는 엄마, 곧 목이 잘리고 눈이 없어진 엄마의 그림들을 발견하며 공포에 질린다. 그 순간 당장 나가라는 영수의 호통에 겁을 먹고 나가버리지만, 다시 도와 달라는 영수의 전화에 급히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더 어둡고 조용해진 집 안에서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의 기예르모 델 토로부터 팀 버튼, 장 피에르 주네, 심지어 우리나라의 임필성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괴기 판타지 식의 호러 영화처럼 느껴진다. 계속 아이들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며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고, 아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를 관객들이 미치도록 궁금해 하던 찰나, 영화는 그들을 배신하는 듯한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그와 함께하는 충격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아이들의 살해한 (특히 장남 아이가 살해한 듯한)엄마의 시체를 발견한 보호 센터 직원은 보호해 주려 한 장남 아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직원을 찾아온 선배와 경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건 현장을 보여준다. 자수하는 것인지, 다른 이가 엄마를 살해하고 직원을 공격했다고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혹은 직원을 엄마 살인범으로 내세우는 것인지 애매한 이 결말에서 충격적이게도 그동안 표정이 없던 남자 아이는 즐거운 미소를 보인다. 곧 다시 표정이 살벌해지다가 직원에게 침묵을 강요하듯 쉿하는 제스쳐를 보인다.  


처음에 이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아마 바로 눈에 바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감독의 의도를 읽고 난 뒤, 여러가지 방면으로 더 시간을 갖고 해석한 끝에 (바보같이)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이 이야기 된 것처럼 부모에게서 아이가 배우듯, 폭력을 당한 아이들도 폭행하는 부모에게서 폭력은 물론 죄책감의 불능이나 이상 성격을 배울 것이다. 주인공 아이들이라고 역시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엄마가 이익을 위해 남편을 살해하고 사적인 분풀이로든 아빠의 죽음에 대한 입막음으로든 아이들을 항상 학대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남매는 (동원이나 금붕어들처럼)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물리적으로 고문하고 상처와 공포를 주고도 그에 죄의식을 못느끼거나 그를 즐기는 같은 포식자로 따라 갔을 거란 결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동원은 폭력의 장난감이었던 아이들의 새로운 같은 장난감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잔안한 메세지와 공포스런 스토리의 장점들 외에도 영화는 그 자체로 매우 근사하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델 토로 감독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고딕 동화적 분위기는 물론, 긴장감과 미스터리를 한단계씩 쌓아올리는 과정부터, 클라이맥스에서 서스펜스와 점프 스케어(Jump Scare)를 비율 있게 섞어가며 보인 모범적인 공포 연출이 매우 훌륭했다. 그동안 장단편을 불문하고 공포영화들에 대해 연속으로 실망을 얻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정말 기적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공포든, 액션이든, 스릴러든, 로맨스든 이렇게 특정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탄탄한 연출과 함께 실험적인 좋은 작품들이 단편으로라도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깊은 바램이다. 물론 장편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면, 더더욱 기쁠 것이다.  



(여담 - 이렇게 기본 요소에 충실하면서도 타이트한 공포 장르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의 감독이 장편 공포영화를 연출해 낸다면, 박기형(여고괴담, 아카시아), 안병기(가위, 폰) 감독처럼은 물론, 같은 여성 감독인 이수연(4인용 식탁, 해빙), 윤재연(여고괴담3:여우계단, 요가학원) 처럼 우리나라 공포물의 새로운 역사를 쓸 대표적인 장르 감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나는 그 믿음을 아직도 굳게 믿는다. 그 점에서, 또 같은 장르 감독을 꿈꾸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신미래 감독에게 큰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리뷰 이동준 (씨네허브 STAFF)

출처 http://bit.ly/2zQO1ez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영화 리뷰 - 독서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