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었다고 다 알게 되는 게 아니더라
인생에 완성이라는 게 있을까?
한국과는 다른 발리의 센 파도에 부딪혀 계속 뒤집어지고 물에 빠지면서 생각했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이는데 나는 서핑을 잘할 수 있을까? 발리의 서핑 캠프에 2주 일정으로 레벨업 강습을 신청하면서 내심 기대했었다. 이 정도 집중적으로 배우면 혼자서 서핑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서핑을 띄엄띄엄하다 보니 실력 향상이 지지부진했는데 이번에는 좀 초보 딱지를 떼고 가보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그런데 막상 바닷속에서 뒹굴며 나의 마음은 한없이 겸손해졌다.
한국의 서핑 강사들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강습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완성된 서퍼가 있을까? 아니,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들도 계속해서 훈련을 하고, 때로는 실수를 하고 부상을 당한다. 장애를 갖게 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건 보통 초보들보다는 실력자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 요가 선생님도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다른 요가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본인 수련을 하시더라.
성인(成人). 우리는 스무 살만 넘으면 성인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하지만 스무 살과 열아홉 살의 차이가 그렇게 큰가? 바뀐 건 달력의 숫자이고 나는 그대로인데, '미성년자'에서 미(未) 자가 저절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완성된 상태에 과연 언제 도달할 수 있을까? 나이를 많이 먹어 죽기 전이되면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흐르는 시간이 저절로 깨달음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 '나는 이제 알만큼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직행열차에 올라타는 것 같다.
좀 전에는 좀 잘 탔던 것 같은데 이번 파도에 또다시 허우적대면서, 죽기 전까지 계속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사람은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므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는 매번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 새로운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 지도 배워야 한다. 설사 오래도록 알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상대방 또한 하루하루 살아가며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늘 하던 대로, 내가 알던 대로, 내 생각대로 하다가는 관계를 망치기 쉽다. 물론 그동안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좀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생은 똑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기 때문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빨리 늙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도전은 20대까지(인심 좀 쓰면 30대 초반까지?)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슬슬 엉덩이가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욱 심해진다. 마치 인생을 찰흙으로 빚다가 더 이상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 굳게 만드는 것 같다. 계속 만져준다면 더 좋은 모양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몇 살이든, 결혼을 했든, 아이가 있든,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든 간에, 무언가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가 더 많이 필요하다.
서핑 선생님이 말했다. "파도 many many야. diferrent 해. more practice 해야 해." 파도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 지형, 간조와 만조 등 여러 조건의 영향을 받아 매번 달라지므로 계속 연습하면서 감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한 번 잘 탔다고 해서 다음에도 잘 타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음에는 또 새로운 파도가 오기 때문이다. 다양한 파도를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각각의 파도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직접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이번보다 잘 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선생님은 나를 다시 바다로 보내며 덧붙이셨다. "Never try, never know."
그렇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시도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인생은 죽기 직전까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한 걸음씩 깨달아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