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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10. 2018

내가 벗고 있다고 해서, 나를 만져도 되는 건 아닙니다

어떤 상점에서 물건을 길거리에 진열해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집어갈 수 있도록 놓여있는 화려한 상품들이 행인들을 유혹한다. 견물생심이라고, 한 사람이 이 진열대 옆을 지나가다 참지 못하고 물건을 훔쳤다. 그 사람은 “물건이 너무 가져가기 쉽게 되어있고 좋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훔쳤다”라고 변명한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물건을 길거리에 진열해놓은 상점 주인의 잘못”이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을 성폭력 상황을 바꾸어보면 낯설지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범죄 중 유일하게 성폭력 피해자만이 원인 제공 여부를 추궁받는다. 피해자가 유혹한 것은 아닌지, 옷차림이 야했는지,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를 따진다. 때로는 저항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너도 즐겼다'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요즘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돈을 주워가도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된다. 이 경우, 누구도 돈을 흘린 사람에게 네가 흘렸으니 빼앗겨도 싸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원한 살 짓을 한다고 한들 누군가 내 실명을 거론하며 내 명예를 훼손하면 나는 그 사람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다.      



왜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걸까?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주기적으로 해소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에서 제때 해소해주지 못하면 절대로 안 되는 욕구는 수면욕과 식욕뿐이다. 이 두 욕구는 목숨과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욕은 해소하지 못한다고 해서 목숨을 잃게 되는 건 아니다. 삶의 질이 좀 떨어지긴 하겠지만, 어쨌든 욕구 조절이 가능하다. 너무 오랫동안 섹스를 못 해서 죽었다는 사례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인간은 사고력(思考力)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고 하면서, 왜 성욕에 대해서만큼은 동물처럼 사고하려고 하는 걸까. 물론 매력적인 상대에게 성욕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인간에게는 충분히 성욕을 참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남성적인 매력 혹은 사랑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성욕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일 뿐이다.  



내가 알몸으로 길거리에서 자고 있다고 해도, 그 어느 누구도 나의 몸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살해당해도 되는 사람, 강도 맞아도 되는 사람이 없듯, 이 세상에 강간당해도 싼 사람은 없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관심 갖지 않고, 가해자의 잘못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어야 한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과 그녀를 응원하는 많은 여성들의 미투(#METOO) 운동이 이러한 변화를 앞당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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