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의 PD로 일하던 때다. 강석, 김혜영이 함께 진행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혼자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게 30년 넘게도 한다. 두 진행자가 20년을 함께했다는 것은 TV 나 라디오에서 없던 일이다. 개성이 강한 방송인이 마음 맞추어 함께 진행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 당연히 축하해 주면서 프로그램 홍보를 하려고 했다. 축하 이벤트 하자고 하니 강석 씨가 고개를 저었다. 청취자가 진행자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게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 말에 더는 밀어붙이지 못했다. 나이 많은 진행자를 좋아할 청취자는 많지 않을 테니까.
MBC라디오 싱글벙글 쇼의 강석 김헤영과 김승월(2011년)
고희를 맞은 올해, 나 역시 남 모르게 넘어 기고 싶었다. 젊었을 때, 70대의 어르신 보던 생각이 떠 올랐다. “벌써 그리 되셨어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이 든 티가 나면 거리감 느끼지 않을까 마음 쓰였다. 그나마 젊게 봐주던 주변 분들 놀래 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가 훈장이던 시절은 저 멀리 갔다.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수명은 늘어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의 짐이 되니 부담스럽다. 게다가 젊음이 대세인 세상 아닌가. 너나 할 것 없이 애써 젊게 보이려고들 하니 고희연이란 말을 내비치기도 불편했다.
그런 고희연을, 생일 상 받는 것도 쑥스러워하는 내가 치렀다. 몸담고 있는 가톨릭 언론인, 방송인 모임인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에서 올해 고희를 맞은 나와 김태식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두 사람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바오로수도회의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님을 모셔와 축하미사를 올리고, 소박한 식사자리도 마련했다. 참석자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도 받았다. 이 모임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행사다. 첫 제안을 받았을 때는 쑥스러웠지만, 과분한 상차림에 축하미사까지 올려주시니 가슴 뭉클했다.
축하한다는 말 들을 때마다, 속으로 그랬다. "축하라니요.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축하해 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고맙다.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하루하루 산다는 게 기적 같다. 온갖 재앙과 사고를 요리조리 피해나간다. 목마르고 배고픈 거, 힘들고 지칠 때, 이 얽힌 세상에서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으며 산다. 산 세월만큼이라도 감사드려야 하지 않을까. 현수막에 '축하미사'라고 하지 않고 '감사미사'라고 써 주니 더욱 감사하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고희연 내내, 이것저것 좋은 면만 들춰 주시고, 그동안의 활동을 무슨 열매처럼 치켜주시니 민망했다. 그 말씀대로라면야 물론 축하받을 인생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아쉽고 부끄러운 게 너무 많다. 보잘것없는 이를 이처럼 대해 주시는 너그러움에 고개 숙였다. 앞으로 맞을 날도 중요하지만 살아온 날들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지. 세월의 흔적이 티가 난들 어떠랴.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야겠다. 지나 온 세월 함께 살아온 이들의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전할까. 답사하는 자리에서 ' 그 마음'이란 글에 내 마음을 담아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