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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Feb 28. 2024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습니다(1)

나를 사랑하는 노력을 시작하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금요일은 정해진 일정이 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가슴 두근거림과 불안, 초조한 증상은 배냇병처럼 나를 힘들게 해왔는데 부모님의 불화가 만든 편치 않은 환경 탓이겠거니 하고 우황청심환으로 땜질을 해가며 애써 무시해 왔었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면서 대성통곡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작년 여름 초입에 나에게 나타난 증상들을 그냥 외면하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 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그렇게 정해진 달의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 일정이 벌써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오백 가지나 되는 질문지와 문장완성 검사, 우울증 검사, 자율신경계 검사가 포함된 초기 검진을 거친 뒤, 의사 선생님과 처음 마주 앉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위태로웠다. 일정한 속도로 가느다란 긴장감이 지속되는 두근거림 증상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현상만으로도 내가 뭔가에 갉아 먹히고 있는 느낌이 들어 매 순간이 괴로웠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선생님이 제발 이 고통에서 나를 건져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울고 있었다. 어릴 때도 엄마가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며 타박을 놓곤 했는데 커서도 이 모양인가 싶었다. 그렇게 나의 첫 상담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끝을 냈다. 울고 나니까 뭔지 모르게 후련하기도 했다. 평생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왜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을까.

 "엄마랑 있으면 뭐가 좋아요?"

 달마다 이어지던 상담 중에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좋은 이유? 그게 이유가 있는 건가 싶었다.

  "어...... 제가 바쁘니까 틈틈이 반찬도 해다 주시고 챙겨주시니까 그런 게 감사하죠."

  "반찬은 옆집 아줌마가 해줘도 감사하죠."

 누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그냥 얼버무렸다. 선생님의 질문은 평범했지만, 지금 나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긴 물음표를 남겼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상담 내용은 대부분 부모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겪고 있는 신체적 증상들이 10대에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가정폭력, 부모의 이혼, 20대부터는 엄마의 남자 문제와 집안의 부채 상환으로 인한 상처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억눌려있는 감정과 엄마와 딸이 뒤바뀐 위치와 역할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내가 가진 과도한 책임감과 공감 능력이 이타주의적인 삶을 살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거라고도 했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알맞을 것이다. 선생님은 ‘과도한’에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

 그랬다. 나에게는 내가 없었다. 모순적인 부모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을 이해하려고는 애썼으나, 나를 살피는 일에는 무심했다. 나의 감정보다는 엄마의 표정과 기분이 어떤지가 중요했고 내 감정을 외면하는 엄마를 탓하기보다는 동생과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줬다는 그 고마움으로 다른 모든 걸 덮었다. 그런데 그 염증들이 마흔 줄에 들어서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은연중에 부모가 자식을 버리지 않고 키웠다는 사실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 합리화시키고 있었음을 아주 늦게 알게 된 셈이다.

 왜 그랬을까. 세상에 태어나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세상은 부모다. 아이에게 그 두 명의 세상은 아이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지표가 된다. 나에게 주어진 그 두 개의 지표는 너무나 극명하게 갈렸다. 아빠는 부모이기를 포기했고, 엄마에게는 버려질까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버려지지 않고 키워졌다는 사실만으로 엄마에게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졌다는 괴상한 논리로 어쩌면 내가 나를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담의 과정은 나의 힘든 감정들을 직면하고 쏟아내는 작업이었다. 그 작업은 한동안 아주 많이 나를 괴롭혔다. 상담을 다녀온 날이면 내내 몸살을 앓는 것처럼 축 늘어졌다. 그다지 삶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음에도, 마지막 주 금요일이 되면 꾸역꾸역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의 진짜 마음은 뭘까?     

 분노, 슬픔, 무기력한 감정들을 단계별로 겪어내다 보면 꼬인 매듭을 조금씩 풀어낼 힘이 생긴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마주해야 하고 틀에 갇힌 신념을 깰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그 여정을 시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의지로 시작한 삶은 나의 것이라는 것이다. 몸체만 커진 나의 내면에서 미처 자라지 못한 가엾은 어린 자아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도, 시커먼 우물 속에 빠진 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람도, 나 뿐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나의 경계를 만드는 일이 시급했다. 진짜 내가 있는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마흔을 앞둔 나는 엄마에 대한 스위치를 끄고 심리적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내가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탐색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찾기와 실천을 진행 중이다.

 비 오는 날 카페에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는 사람들과 풍경 구경하기

 길 가다 마주친 귀걸이 좌판에서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골라 그 자리에서 착용하기

 아침 일찍 일어나 뒷산에 오르면서 나무 냄새, 흙냄새에 집중해 보기

 수첩에 나의 감정과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적어 보고 말로 해보기

 만나면 마음이 편한 사람과 좋아하는 초밥 먹으러 가기 등등...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선생님 앞에서 울고 짜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내 삶과 가치관을 할퀴는 그 상대가 비록 나의 혈육일지라도! 나는 나의 경계를 확실히 지키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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