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아저씨와 엄마
그때, 그 순간 물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부모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이혼했다. 부모의 이혼 전 사연들은 드라마의 플롯으로 쓰면 좋을 만한 사건들이 큼직하게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 진부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각설하고, 살던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였던 부모의 이혼으로 동생과 나는 엄마를 따라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깍쟁이 같은 서울 얘들과 차갑기만 한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학교에서 겉도는데 한몫했고, 나는 왕따인 듯 아닌 듯이 겨우 3년을 채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는 신당역 근처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미싱일을 하며 세 식구 살림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적당히 알아서 착실하게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주방 겸 거실인 주택 반지하에 살던 때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데 웬 아저씨가 제집인 모양 거실에 턱 하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뭐지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으니까 싱크대 앞에 서 있던 엄마가 찬바람 들어오는데 왜 그러고 서 있냐면서 타박했다.
"엄마 친구야. 인사해."
"어... 안녕하세요."
그 아저씨는 쭈뼛거리며 인사하는 나에게 어정쩡하게 입술만 움직여 어색한 웃음을 만들어 낸 뒤 고개를 끄덕였다. 키는 잘달막한 데다 몸은 삐쩍 말랐고 눈만 툭 튀어나온 게, 마른 멸치가 생각났다. 아무리 어른이어도 인사를 뭐 저렇게 받나 싶어 기분이 나빴다. 그게 멸치 아저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아저씨가 저녁까지 먹고 돌아간 뒤에 엄마는 내게 슬쩍 물었다.
"아까 집에 온 아저씨 어때?"
"뭐가 어때? 그 아저씨 기분 나빠. 생긴 건 멸치같이 생겨서 말도 없고, 첫인상도 별로야. 그 아저씨 정말 엄마 친구야?"
엄마는 대답을 삼켰다. 그 뒤로 멸치 아저씨는 틈만 나면 집으로 밀고 들어와 우리 가족처럼 굴었다. 동생과 내가 명절에 삼촌을 따라 외할머니댁에 다니러 간 사이에 집에서 엄마랑 자고 가기도 했다. 삼촌의 일정이 당겨지면서 하루 일찍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동생과 내게 멸치 아저씨와의 은밀한 밀회를 들켜버린 엄마는 멋쩍어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그 상황을 흘려보냈다.
멸치 아저씨는 미장 기술자로 공사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를 만나러 수시로 우리가 살던 동네로 출근 도장을 찍더니 아예 우리 집 근처에 셋방을 얻어 살았다. 멸치 아저씨가 엄마의 그냥 친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서 나의 심통은 불편해졌다.
나는 멸치 아저씨가 집에 오는 게 제일 싫었다. 밖에서 만날 일이지 집에까지 데리고 오는 건, 아무리 엄마라도 다 큰 자식들한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정식으로 인사를 시키던가! 무작정 들이미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말보다 감정이 앞선 아이였던 나는, 말을 하기 전부터 이미 눈물이 터져 우느라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을 못 하고 속을 끓이면 불편한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있는 대로 싫은 내를 풀풀 풍기면 엄마는 나를 심보가 고약한, 꼬락서니가 더러운 애로 취급했다.
"나이가 스물이 넘었으면 이제 엄마도 이해할 줄 알아야지! 계집애가 꿍하고 얼굴 찡그리면서 입 다물고 있을 거면 나가 살아! 으휴... 김 씨 종자가 어디 가겠어. 지겹다, 지겨워."
내가 말대꾸라도 하면서 기어오르겠다 싶으면 엄마는 나를 못된 딸로 만들거나 자신의 팔자타령을 하면서 나의 말문을 막아 버리곤 했다. 엄마가 날카롭게 쏘아대는 말들은 단어 하나하나가 화살이 되어 나를 무력화시켰다.
엄마는 자식들의 눈치는 전혀 안 보는 사람이었다. 멸치 아저씨를 동네 이웃으로 만들더니 얼마쯤 지나고 나서는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옆집으로 아예 들어앉혔다. 멸치 아저씨가 옆집으로 이사하는 당일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은, 나에게 두고두고 아주 큰 상처가 됐다. 그렇게 멸치 아저씨는 17년간 우리 집과 벽을 하나 사이에 둔 옆집 아저씨로 살았다. 엄마는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신의 팔자를 들들 볶아대며 분주하게 살았는데, 이런 이상하고도 괴이한 주거 형태를 만든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이유를 물어봤으면 설명해 줬을까? 그때, 그 순간에 묻지 않았던 나에게 후회가 남는다.
엄마의 분주한 두 집 살림은 정확히 17년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멸치 아저씨의 고향행이 결정됐을 때, 엄마는 이제 신경 쓸 일 없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했다. 멸치 아저씨는 엄마가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환갑이 넘은 엄마와 마흔을 앞둔 나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엄마는 로봇처럼 감정에 무감각하다. 나는 감정에 무척 예민한 사람이다. 엄마의 감정수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안정 애착 결핍이 있었던 나에게, 엄마는 무관심과 회피로 일관했다. 대화의 흐름은 툭툭 끊기고 화젯거리가 탁구공처럼 여기에서 저기로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화법은 양질의 대화를 추구하는 나에게 거리감을 만든다. 그래서 엄마와의 대화에는 늘 날 선 긴장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엄마와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