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에게

세상의 모든 부모로부터 유일한 존재들 - 1화

by 침목

그러니까,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할머니가 암에 걸리셨다. 아니, 사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어느새 당신도 모르게 암세포와 싸우고 계셨다고 했다. 나는 이 갑작스러운 사실을 격양된 엄마의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첫째 이모의 흐느낌 사이에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통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모의 말소리가 엄마의 울음소리에 점점 파묻혔다. 엄마의 울음은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엄마의 눈물샘에서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리고 슬픔은 고함과 원망으로 바뀌었다.


“왜 이제서야 말을 해!!!”


엄마는 자신이 형제들 중 맨 마지막에서야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쩌면 이 순간마저도.. 할머니와 형제들을 제외한 당신만이. 결국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깊은 상실이 엄마를 집어 삼킨듯 했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일 때까지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쏟아냈다. 그저 하염없이. 바다처럼 파도를 토해냈다.


***


나는 다음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밤부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제비처럼 밤새 머리맡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옷가지를 챙기고, 배낭을 둘러멨다. 방을 나가기 전 나는 잠시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 안율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율아, 준비 다 했으면 가자.”


엄마의 목이 다 쉬었다. 하룻밤 사이에 꼭 반쪽이 된 얼굴로. 엄마는 쓰러질 듯 현관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발치에 놓인 장바구니 속엔 칫솔과 수건, 여벌 옷과 속옷이 어지러이 담겨있었다.


“응. 가요.”


나는 식탁 한켠에 있던 약통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엄마를 뒤따라 집 밖으로 나오자, 습하고 짙은 비 내음이 났다. 아직 완전히 그치지 않은 비를 피해 우리는 우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우산 손잡이를 고쳐 잡으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나긴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휴... 더워..”


터미널에 도착하자 엄마는 손수건으로 연신 벌게진 얼굴에 맺힌 땀을 훔쳤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인파가 터미널 역 지천에 몰려 열기를 토해냈다. 나는 그나마 건물 틈새로 바람이 통하는 자리를 찾아 엄마를 불렀다. 아스팔트에 튄 빗방울이 바짓단을 적셨지만, 후덥지근한 실내보다는 나을 듯했다.


“표 사가지고 올게. 여기 있어.”

“... 카드 가져가.”


엄마는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뒤져 카드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이것이 결제 용도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그 이상의 것이라도 되는 양, 단단히 손에 쥐고 매표소로 향했다.


“7시 35분 남원 두 장이요.”


역무원에게 표를 건네받아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나는 외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의 엄마. 이는 다소 생소한 명칭이었다. 나의 첫 기억에서부터 할머니는 이미 노년을 살아가고 계셨다. 때문에 훗날 할머니가 병환을 앓으시거나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연세는 72세로 경로당에서도 막내에 속하신다고 하셨다. 언젠가 엄마에게 할머니는 경로당에서 괴롭힘을 당하셨다며 서럽게 우셨다고 했다. 점심 무렵 끼니를 위해 모이면 그중 유독 할머니를 은근히 구박하거나 먹을 것으로 눈치를 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했다.


선미 고년이 여상에 다닐 때. 은자라고, 감들 마을 큰 이모네 딸을 못살게 굴었어. 언젠가 중매쟁이가 왔었어. 감들 마을에 은자가 얼굴도 곱고, 말씨도 나긋해서 인기가 좋았거든. 그런데 선미가 귀신같이 알고 그쪽 중매 상대를 채갔어. 나중에 중매쟁이랑 감들 마을 이모들이 둘의 연애 사실을 알고는 쫓아와 말려도 보고, 애원을 했는데도 결국 여시같이 꿰어 결혼했지. 싹수부터 심보가 못 되어 처먹은거야.


엄마는 이모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진 않았다. 특히 외가 이야기가 나오면 목에 핏대를 세우곤 날카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 칼날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하나같이 엄마의 감정이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심장 언저리를 파고들어 영영 박혀있는 그 가시가 무엇인지. 대체 얼마나 깊게 박혀 있기에. 여적 엄마의 삶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울렁거려...


나는 버스 창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빗물 속에 잠긴 산과 몇몇 집이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풍경의 변화를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미약하게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옆을 돌아봤다.


“먹어. 정신없어서 딸 아침도 못 먹이고 나왔네.”

“엄마부터 먹지.”


엄마는 대답 대신 나에게 복숭아 한 조각을 재차 내밀었다. 가장 크고 예쁘게 잘린 첫 번째 조각. 달큰한 향을 맡자마자 밀려드는 허기에 나는 허겁지겁 복숭아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복숭아를 열심히 씹어 넘기며 엄마를 바라봤다. 어서 먹으라는 듯 눈을 맞추자, 엄마는 복숭아 한 조각을 더 잘게 조각냈다. 그리곤 엄지손톱만치도 안 되는 작은 조각하나를 마지못해 입 안에 넣었다. 엄마는 남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한 조각을 채 씹지도 않고 머금고만 있었다.


엄마가 집었던 복숭아 조각은 가장 신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