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제목만으로도 누구나 아는 ‘드래곤볼’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비루스라는 캐릭터는 파괴의 신으로 주인공인 손오공을 압도하는 절대적 파워를 자랑한다. 또 자신에 견줄만한 파워를 가진 이와의 대결을 즐기는 도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 비루스가 극 중 이런 대사를 남긴다. ‘새롭게 만들려면 먼저 파괴를 해야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많은 사회적 영향과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특히 인류의 먹고사는 문제를 논하는 경제학에서는 끊임없는 기반의 파괴와 새로운 기반 창출의 반복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이론 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의 이론에는 ‘앙트레프레너’라는 말이 등장한다.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는 프랑스어의 ‘착수하다 ‘ ’ 시작하다 ‘가 그 어원인데 현대에는 ’ 기업가’ 내지는 ’ 리스트(risk)를 감수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기존의 경제체제를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지닌 새로운 아이디어는 세상의 모습과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세상을 바꾸는 이들이 곧 앙트레프레너이며 이들은 기존의 경제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마치 창조를 위해 파괴하는 비루스처럼 말이다. 앙트레프레너가 등장하면 그 사회는 변혁을 맞이하게 되며 앙트레프레너가 기존의 경제체제를 뒤흔드는 방법은 4가지다. 바로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구조의 개척이다.
첫째,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어 기존의 기반을 파괴한 대표적 창조자로는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이 두 사람은 혁신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천재로 불린다. 에디슨에 의해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밤에는 빛이 없었으므로 야간에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전구가 발명된 후 공장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가동되었고 이로써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들의 필요성이 생겨났으며 이는 취업률 증가로 이어졌다. 취업자의 증가는 소비가 가능한 사람들이 늘어남을 의미하므로 소비의 증가는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또 헤드라이트를 통해 밤을 밝힐 수 있게 되자 야간 물류운송도 가능해져 빠른 시장형성과 거래가 촉진되어 경제의 규모도 커지게 되었다. 경제규모는 곧 시장의 크기를 말하며 시장의 크기는 공급과 수요의 양에 비례하므로 전구의 개발은 시장을 키우고 활성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늘 손에서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 역시 혁신적인 상품이다. 원거리 소통수단으로 여겨지던 전화기의 역할에서 이젠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이 되었다. 본래의 역할인 원거리 소통은 물론 영상, 음악, 연산, 교통, 결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특히 산업 전반에 걸친 영향력은 막강하다. 스마트폰의 음악 재생 기능과 영상 스트리밍 기능은 음원 및 영상물 제작 관련 유통구조와 시장을 변화시켰고 스마트폰의 소셜 네트워크 기능은 1인 방송을 이용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며 우리가 잘 아는 유튜브 게임 스트리머 대도서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와 같은 1인 기업 등장의 기반이 되었다. 1인 기업은 그동안 회사란 조직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좋은 콘텐츠만 만들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언론계도 변화했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집회시위의 현장을 촬영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권력 감시가 가능해졌으며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기자가 현장에 가기 전 이미 시민들에 의해 먼저 보도되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는 권력의 남용과 비리를 막는 효과만 아니라 언론을 견제하는 기능까지 더해져 언론으로 하여금 올바른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이는 국민으로 하여금 보다 커진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둘째, 새로운 생산방식은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과 상용화를 촉진함으로써 막강한 경제효과를 창출한다. 미국의 전통 있는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Ford)는 1913년 이전까지 수제 조립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는 작업자들이 일일이 생산 공정을 돌아다니며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여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자동차 한 대를 조립 생산해내는데 1,400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따라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자동차는 매우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포드사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1913년부터 컨베이어 생산방식을 도입했다. 이 방식은 자동차가 조립공정에 따라 컨베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작업자들은 한 곳에 머물러 도착하는 자동차에 해당 부품을 조립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생산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종전 1,400분이 걸리던 조립공정은 단 90분으로 단축되었고 이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자동차의 가격은 대폭 낮아졌고 일반 서민들도 자동차를 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헨리 포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동차 판매 수익의 많은 부분을 직원들의 임금인상으로 투여했고 이렇게 소득이 높아진 직원들은 다시 수요자로서 소비를 촉진해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1914년에 최저임금을 하루 5달러로 상승시키고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동정책을 병행한 것이다. 그는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생산효율을 높여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더불어 생산성을 높여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하며 이로써 제품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확대한다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논리로 출발했지만 그의 이런 산업 철학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막강한 것이었다.
셋째, 새로운 시장개척은 일부 영역의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창조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미개척된 거대한 신 시장의 발견을 의미했고 그 배경은 동양의 진귀한 물건을 수월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새로운 무역항로 개척을 위해 항해에 나섰던 것이 계기였다. 콜럼버스의 이러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나라 간 교역이 가능해짐으로써 자국 내에서는 얻지 못하는 새로운 원료와 상품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쇠퇴하는 산업과 흥하는 산업이 엇갈리는 구조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거래 국으로부터 값싸고 질 좋은 원료 및 상품이 수입되면 기존의 관련 내수산업은 무너진다. 수요에 변심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그동안 2,000원에 사던 국산 볼펜 대신 동일한 품질로 500원이면 살 수 있는 수입 볼펜을 찾게 되는 현상과 같은 이치다. 국가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면 이렇게 일부의 산업은 파괴되지만 반대로 발전하는 산업도 있다. 먼저 새로운 원료와 상품이 유입되므로 물류와 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상업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고 원료를 값싸게 살 수 있게 되므로 해당 원료를 원재료로 하는 관련 생산업은 성장하게 된다. 즉 새로운 시장의 개척은 단순히 판로를 여는 개념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산업기반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국부가 창출되는 것이다.
넷째, 새로운 산업구조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만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대항해 무역을 하면 크나큰 부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하고 항해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투자를 받고 지분을 나누어 주었다. 투자자들은 혹여 회사가 잘못되더라도 투자분에 대한 손실만 감수하면 되므로 회사로 인한 법적 책임으로부터 안전했기에 거부감 없이 투자에 열을 올렸다. 이렇게 동인도회사는 사업설명회를 통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모았고 이것이 오늘날 주식시장의 시초가 된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위험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는다. 개개인이 수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투자하기에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는 투자자들이 기대 가능성을 느끼게 할 만한 가치와 기대심리를 증폭시킬 사업설명회를 열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벤처기업의 탄생과정이다.
벤처사업가는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나 사업을 실행할 자본이 없어 자본가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사업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 같은 벤처사업가들의 등장은 기존보다 더욱 발전된 상품 및 서비스의 탄생을 의미하며 공급과정에서 기존 회사들과 경쟁을 하게 되므로 보다 낮아진 가격과 품질향상으로 높은 수요를 창출해낸다. 즉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를 파괴하는 동시에 시장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또한 자본투자도 많아지므로 금융이 활성화되고 금융경제시대 하에서는 경기활성의 선순환을 이끈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한국에서는 세계경제를 뒤흔들만한 앙트레프레너가 나오지 않았다. 전자 및 조선 등 세계 1위를 달리는 산업분야들이 있지만 종전의 품질을 향상하는데 그쳤으며 산업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앙트레프레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들이 참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