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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Jun 23. 2024

무통주사 놔주세요 제발!

39주차 초산모가 겪은 극한의 유도분만 과정

나는 짐승처럼 포효했고, 울부짖었다


호기롭게 가족분만실에 들어섰을때만해도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입원 다음날 아침쯤 분만해서 3일간 요양한 뒤, 조리원에 가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39주차 0일이 되었을 때도 자연 진통이 오지 않기에 잡아두었던 분만 일정.

당일 새벽에 살짝 가진통 기미가 있었으나 오래 가지 않길래 예정대로 일요일 저녁에 입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줄도 모르고.


유도분만은 대개 환복, 입원 안내, 제모, 관장, 반복되는 내진, 촉진제 투입, 경부 열림, 분만 순으로 이뤄진다.

분만의 단계를 크게 4개의 절차로 나눠보자면,

1기 개구기, 2기 분만기, 3기 태반 만출기, 4기 지혈 및 회복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궁(포궁) 경부가 10cm로 열리기까지가 1기에 해당하며, 이 시기가 가장 고통스럽고 아프다.

솔직히 말하면 '아프다' 라는 말로 감히 요약하기가 힘들 정도다.


제모


입원 5일 전, 샵에 가서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았다.

안 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개 출산 예정일 7~10일 전에 받는 편이 좋다고 들었다. 

털을 뜯는 과정에서 심히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없는 선택이다.

산부인과에서 분만 준비 중에 간호사 분들이 제모를 도와준다지만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모질도 굵은 그 부위에 면도기로 슥 밀어서는 피부 자극도 받고, 

나중에 자라날 음모도 인그로운 헤어가 생겨 가렵고 따가울까봐 받았다.

왁싱이 더욱 유의미하게 작용했던 때는 오로 배출 시기였다.

생리혈(정혈) 보다 많은 피와 몸 속의 잔여물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데, 후처리가 편하다.

미리 받고 온 게 진실로 다행이다.

제모 역시 일명 자연분만 3대 굴욕이라고 불리는 3대장(제모, 관장, 내진) 중 하나이지 않은가.


관장


제모, 내진이 아픔을 수반한다면, 관장은 치욕을 수반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좌약을 넣고 15분을 참는 사람이 있긴 할까?

투약 후 간호사분은 나의 인권(?)을 위해 빠르게 나가주셨다. 준비 다 되면 부르라며...

태동이 여전한, 배가 부른 상태로 누웠다 일어나기도 어려운데

1~2분만에 참기 어려운 배변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1분도 안 걸리는 분만실 내부 화장실이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다급한 말투로 '미쳤다'를 연신 외쳤다. 

참지 못해 바닥에 지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심란했다.

어쩐지 남편보고 첨부터 바깥에 나가 있으라고 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앞으로 더한 꼴도 볼텐데, 벌써부터 시청각적인 충격을 줄 필요가 없겠구나! 


내진, 그리고 양수가 터지다


37주차 0일에 처음 받았던 내진은 새발의 피요, 앞으로 더할 내진통에 비해 약과였다. 

38주차 0일에는 힘을 쭉 빼야 함을 체득한 상태에서 받았던 터라 견딜만 했으며, 

39주차 0일에는 아주 작정을 하셨는지, 결국 내진혈, 이슬로 추정되는 피와 약간의 가진통을 수반했다.

그리고 대망의 39주차 4일, 유도분만 입원일... 이 때부터는 좀 더 깊숙히 살펴보는 촉진이 시작됐다. 


3교대로 근무하는 분만실 간호사분들이 돌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내진을 하고 가는데,

각자의 손맛이 사뭇 달랐으며, 받을 때마다 아팠다.

유도분만 전날 질정을 넣고 새벽 3시부터 촉진제를 쓴다고 안내 받았는데,

내진빨을 제대로 받아서인지 가진통부터 진진통까지 전개되어 투약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경부가 3cm 정도 열리면 그 때부터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들었으며,

그 명성은 익히 들어왔기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배에 부착된 감지기로 태아 심음, 자궁 수축 정도가 표시되는데

수치 30 이상부터는 끙끙 앓는 소리를 밖에 없을 정도로 아프다.

생각을 분산시키려 책을 가져왔건만, 솔직히 10페이지도 못 봤다. 

내진하러 왔다 갈 적이면 그 때부터 무한의 고통이 시작됐으며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울컥! 하고 나온 무언의 액체에 남편도, 나도 놀라서 간호사를 불러보니, 붉은 혈흔이 가득한 이슬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 헷갈리게 나왔다. 


솔직히 가진통 때야 이성을 붙들고 있는 편이라, 고통이 가시면 남편에게 말도 걸고 농담도 하곤 했는데

수축의 강도가 50이상이 되면서 더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게 됐다.

그런데 2cm 밖에 안 열렸다고?!

계속 참으면서 3cm까지 열리길 바랐다.

또 한번의 내진. 왜 자꾸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리라는 거야! 아파 죽겠는데!

솔직히 넣는 손가락도 손가락이지만, 주먹을 쥐고 있는 나머지가 주는 압통도 상당했다.


드디어 3cm 개대! 무통주사 놔달라고 호출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주말에는 마취과 선생님이 새벽 대기가 아니라서 오전 9시쯤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눈동자에 비친 시계에는 현재 시간이 새벽 3시라는 시각 정보가 담겼으며,

이는 곧 내가 최소 6시간 생으로 진통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금식은 둘째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물까지 마실 없음이 더욱 힘들었고 목이 타들어갔다.

혹시 모를 수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위장에 있어선 안된다고...


30~80을 왔다갔다하는 진통은 종종 100 이상을 넘어가기도 했다.

좀 더 자주 울컥거리며 출혈이 있었고, 와중에 복식호흡으로 태아 심음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해야 했다.

남편이 옆에 없었다면 외로움까지 견뎌야해서 더욱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근육 진통주사가 있어서 그걸 맞으면 약 1시간 정도 통증이 가라앉았는데

성분 특성상 4~6시간 마다 한 번씩밖에 투약이 불가능했다. 


몸이 아프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취약한 정신력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저 태아 심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목마른 입으로 거친 호흡을 이어갔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밀려왔다.

이제라도 제왕절개로 바꿀 순 없는지까지 물어보았으나, 그것도 자리가 나야 한단다.

덜덜덜- 하고 떨리는 몸과,

내 입에서는 사람의 말인지 짐승의 울부짖음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아무 말이나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뭐라도 배출하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았다.


와중에 항생제 테스트를 하고 갔는데, 아플거라는 말과 달리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하복부를 가득 메운 진통의 고통이 더욱 컸기에. 


지나가는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인내심이 바닥이 나, 남편에게도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출산 과정을 다룬 드라마 장면에서 왜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세게 쥐고 뜯는 행위를 해서라도 이 고통이 멎었으면- 하고 바랐다.

두피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몇 번을 쥐어 뜯었는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배에 복압이 가득 밀려왔다.

지구 밖으로 탈출하려는 정신줄 간신히 붙잡고 숨을 들어마시고 내쉬려는데...

며칠 묵은 대변이 나오려는지 갑자기 복부에 힘이 들어가더니...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양이 상당했다. 실로 지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을까?

남편에게 물어보니 락스 냄새 같은 게 났고 묽은 액체였다. 직감했다. 이는 곧 양수라는 것을.

그리고 경부는 6cm가 열려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또 내진... 아프다고 외치니 한 간호사가 내진이 아픈지, 진통이 아픈지를 묻는다.

"내진이 아파요."


무통천국! 그런데 왜... 하늘을 보고 있어?


양수가 터지고 난 뒤, 머지않아 마취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라며 경련하는 몸으로 겨우 내뱉은 말. 

척추에 카테터를 삽입하고 마취액을 투입하는 형식이라 허리를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어야 하는데,

뻐근하고 아플거에요- 라는 말과 다르게 아픔이 크게 체감되지 않았다.

그만큼 진통이 더욱 아팠고, 무통주사가 간절했기 때문일까?


마취제가 퍼지는데 한 10분 정도 걸릴 수 있는데, 조금씩 약이 돌면서 하반신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있을 때 다리에 쥐가 오는 상황을 생각하면 되겠다. 

본격적으로 따끔따끔해지기 직전, 몸에 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과 흡사하다. 

그리고 고통이 1/10 수준으로 경감되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평온을 찾았으며, 이성을 회복했고, 비로소 짐승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상냥해졌으며, 

내진하러 온 의료진들에게 공손하며 친절해졌고, 기꺼이 양 다리 무릎을 세워 촉진하라 몸을 내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치의와 누가봐도 수석 조산사 내지 수간호사 같은 복장을 한 분이 오셨는데,

그 때부터 분만이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째 돌아가는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복식호흡에 좀 더 신경쓰라며 자리를 잡아줬고, 자세를 우측으로 바꿔 누우라고 했다. 


드디어 분만 1기의 종료 임박 시점을 알리는 듯, 경부가 10cm 개대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때 침대가 분만을 코앞에 둔 형태로 바뀌어야 했고, 

본격적으로 힘을 줘야 하는 시기가 찾아와야 했다.


"아기 얼굴이 하늘을 보고 있네요. 조금 더 기다려보죠."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무통빨을 받아 진통은 체감하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좁은 뱃속에서 버티고 있을 아이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

목마름도 어느새 잊고 크게 숨을 쉬었고, 아기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내가 오른쪽으로 몸을 뉘인 탓에 더는 태아 심음과 진통 수치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러나, 초산모의 유도분만은 결국 수포로 끝났고,

나는 응급 제왕절개 환자로 수술실에 들어가 집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유도분만 #초산모 #임산부 #임신출산 #자연분만 #39주차 #무통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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