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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존재의 의미를 묻는 너에게 2

『백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비룡소, 2002』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 오후면, 나는 동네 책방을 즐겨 찾는다. 그날도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어 동네 책방에서 뒤적뒤적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집어 든 그림책 한 권이 내 심장을 흔들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한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순간 온 세상이 텅 빈 공간처럼 고요해지고, 나 홀로 그림책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 책 속의 삶을 함께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의 표지에는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얼룩 고양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거칠고 날카로운 선들과 수채화의 짙은 얼룩들이 고양이를 더욱 차갑고 낯선 느낌이 들게 한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던 얼룩 고양이.

한때 임금님의 고양이로 사랑받았고, 뱃사공과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으며 도둑과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던 적도 있었지만, 고양이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고양이 앞에, 어느 날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나타나고 얼룩 고양이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하얀 고양이가 생명을 다한 날, 고양이는 밤낮없이 백만 번을 울었고 마침내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런데, 사랑도 없고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고양이는 왜 백만 번이나 다시 태어났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덧없는 삶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한다. 윤회는 집착과 욕심으로 인한 괴로움의 결과다. 그렇다면 윤회를 반복하는 고양이는 사실, 무언가를 강렬히 욕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깊은 내면에서 고양이는 삶의 이유를 알고자 했고,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을 것이다. 백만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 끝에 진정한 자아를 찾고 사랑을 알게 된 고양이!

마지막 문장,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를 다시 읽었다.

자신과 하얀 고양이, 새끼 고양이를 마음껏 사랑했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이룬 고양이는 다시 태어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삶에서의 꿈을 이루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고양이는 불교에서의 해탈,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일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슬프면서도 후련한 안도감이랄까... 백만 번 산 고양이와 함께 기나긴 삶의 여행을 끝낸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백만 번을 살고 있는 고양이가 되었다. 한 때 임금님의 고양이였다가 뱃사공의 고양이였다가... 그 모든 삶의 기록들이 끊임없이 풀어지는 실타래의 실처럼 느껴졌다. 그 길고 긴 윤회의 삶 속에서 얼룩 고양이는 결국 삶의 이유를 찾았고, 고양이로서 사랑하고 행복했다. 

나 역시, 이 얼룩 고양이처럼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윤회의 답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백만 번 산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도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백만 번을 다시 살게 될까, 아니면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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