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전의 저는 어리석게도 대중가요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돌 노래를 대중성과 상품성에만 치중하여, 가장 중요한 음악성을 저버린 가벼운 노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적인 가사와 애절한 가창이 어우러지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나, 실험적인 시도로 파격적인 노래를 선보인 장기하의 노래 같은 것들에 비하면 아이돌 노래는 상대적으로 그 질이 떨어진다고 마음속으로 폄훼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이 브런치에 적어 놓는 것도 창피할 정도로 편협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대 후 훈련소 2주 차 때, 조교들이 강당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띄워준 트와이스의 '하트 셰이커' 뮤직비디오(이하 '뮤비'로 칭함)를 보고 한국 아이돌의 높은 수준과 노래의 뛰어난 완성도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청바지에 흰 티라는, 아이돌 뮤비치고는 담백한 느낌의 의상을 입고 있었음에도 멤버들은 마치 '그거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듯 자신들의 뛰어난 비주얼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고. 거기에다 사랑스러운 안무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의 시원스러운 보컬은 가히 절정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뮤비를 보며 감탄할 때마다 아이돌 노래를 낮게 평가하던 과거의 저 자신을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커다란 스크린으로 띄워주는 바람에 시선이 끌려 보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레 사회와 단절된 청춘이 그리운 사회생활의 향수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드물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하트 셰이커의 뮤비를 황홀한 기분으로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트와이스의 멤버 9명은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유난히 튀지도 묻히지도 않는 각자의 은은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뮤비를 보고 있자면 마치 만개하는 봄날의 꽃밭을 보는듯한 충만함을 주었지만 그 형형 색깔의 꽃들 가운데서도 가장 제 시선을 끌었던 건 단연코 다현이었습니다. 하트 셰이커 뮤비의 도입 부분, 다현이 관자놀이에 손가락 총을 들이밀며 찡긋 웃는 장면은 제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익살이었어서, 저는 그 장면을 처음 보고 원시인이 불을 처음 발견한 듯, 눈이 절로 커지는 충격을 맛보았습니다.
트와이스 Heart shaker MV의 도입 부분 이때 다현의 사랑스러움은 제 뇌리에 깊게 박히게 되어, 저는 자대에 가서도 트와이스의 하트 셰이커 뮤비를 반복해 들으며 다현의 사랑스러움을 되새김질하거나, 아니면 트와이스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다현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곤 했습니다. 다현이 여러 곳에서 보여준 끼와 매력들은 정말 엄청나서, 제가 보아왔던 다현의 모습들을 그저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뛰어난 9명의 멤버들 가운데서 유난히 제 시선을 끌게 된 다현만의 매력은, 단연코 그녀만의 사랑스러움이지만, 이 사랑스러움이라는 걸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다현이 웃으머,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꼬리가 가늘게 늘어졌을 때, 그리고 노래를 틀으면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띄우며 흥을 주체하지 못할 때, 진지한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할 때, 다현이 몹시 사랑스럽다고 느꼈습니다. 다현의 사랑스러움은 전체적으로 그녀의 장난기에서 묻어나는 듯합니다. 그건 그냥 다현이 엄청 예뻐서 그런 거라고요? 제 순수한 팬심을 곡해하지 마세요.
아직 핸드폰이 군대에 풀리기 전, 관물대에 인기 연예인의 사진을 모아놓는 취미가 있었던 병사들은 가끔 저를 위해 구해온 다현의 사진들을 제게 선물해주곤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선물 받은 사진들을 관물대 이곳저곳에 붙이며 마치 다현을 제 군생활의 수호자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사진 된 수호자는 상관의 갈굼을 막아주거나, 예정된 훈련을 취소시키는 등의 행운을 만들어주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발함으로써 어두운 제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지금은 전역을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제 감각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던 막사 내 풍경들과 거친 모포의 감촉들이 이제는 완전히 희미해지고 눈을 뜨면 보이는 제 방 천장의 모습들도 당연하게 느껴짐으로써 몸도 마음도 완벽한 일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역과 함께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지만 아이돌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만큼은 전역 후까지 연장되어 지금은 트와이스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아이돌에도 많은 관심을 주고 있습니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여러 걸출한 아이돌의 틈바구니 속에서, 감동이라는 게 늘 그렇듯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는 않기 때문에, 훈련소 때 보았던 하트 셰이커의 감동도 다현이 준 충격도 서서히 옅어졌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추억이라는 포장 속에선 다현과 함께 했던 군 생활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