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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 Apr 21. 2022

비로소 고하는 피터팬과의 작별 (2)

외면하던 성숙과의 조우, 그리고 어른으로

열한 살 무렵의 어느 늦여름, 아랫집에 살던 친구네가 어쩐지 분주했다. 친구 아버님은 마당에 있던 개집을 손보고 있었고, 친구 자매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며 얼굴 가득 기대감에 찬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알고 보니 새끼 고양이를 데려올 거라 했다. 갑자기 무슨 고양이냐 물으니 근처 교회 옆 허름한 주택 틈새에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듯한 꼬물이 세 마리가 버려져있어 한 마리 입양을 결심했단다.


친구를 따라 고양이들이 있다는 곳으로 가니 정말로 어린 내 손도 다 못 채울 정도로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들이 애처로이 울고 있었다. 특히 점박이 무늬의 가장 조그마한 녀석은 눈조차 뜨지 못하고 허공에 손짓하며 비틀거렸다. 주변에 계시던 할머님 얘기에 의하면, 어미가 있던 아이들인데 이틀 전쯤부터 어미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만 방치되어 죽어가는 게 안타까워 누구라도 키웠으면 한다고도 하셨다.


주황빛 몸에 연한 줄무늬를 가진 두 아이, 그리고 막내임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몸에 까만 점들을 가진 아이 하나.


친구네는 세 녀석 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녀석을 추려 데려갔고, 주황이 하나와 점박이는 그렇게 남겨졌다.



고양이들을 줄곧 바라보다 나는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아기 고양이들이 버려져 있는데 너무 안쓰럽고 귀엽다고. 친구네도 데려갔는데 우리도 데려오면 안 되냐고 말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키우는 것에 항상 결사반대이던 엄마였지만 사정도 그렇고 계속 고양이에게 마음 쓰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그럼 한 마리 데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미를 잃은 아이들이고 친구네서 한 마리를 데려갔으니 주황이와 점박이는 서로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둘을 떼놓을 수는 없어 무조건 두 마리를 같이 데려와야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두 마리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결국 난 완강한 반대에 수긍하고 둘을 데려오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작은 그릇에 우유를 담아 고양이들에게 향했다.


-


다음날, 뭉게뭉게 자꾸만 피어오르는 고양이 생각에 영 수업에 집중 못하던 나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곧장 고양이들에게 달려갔다.


왜인지 주황이는 틈새에서 내려져 커다란 고무대야 안에서 울고 있었고 점박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고양이들의 사정을 들려주신 할머니께서 근처 의자에서 쉬고 계시길래 점박이는 어디로 갔는지 여쭈었다. 할머님은 점박이가 물이랑 우유 그 무엇도 입에 못 대고 밤새 끙끙 앓기만 하더니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를 전해주셨다. 사체와 함께 둘 수 없어 초라하긴 해도 주황이 거처를 임시로나마 따로 마련했다는 말도 함께.


셋 중에 유난히 작고 마르고 힘없던 점박이의 끝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으나 생각보다 갑작스레 다가온 이별은 어린 나이의 나에겐 큰 슬픔이었다. 게다가 이제 정말 홀로 남겨진 주황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동생을 잃은 주황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습관적으로 울음소리를 내는 녀석을 내내 지켜봤다.


(동생도 잃고 혈혈단신이 되었으니 이젠 집에 데려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는 하루 만에 역시 동물은 안 된다며 마음을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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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주일 가량 나는 매일같이 주황이를 보러 갔다. 새끼가 사람의 손을 타면 어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2-3일 정도는 손도 대지 않다가 어미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후론 쓰다듬기도 많이 했다. 손에 올려놓으니 아주 작은 존재임이 실감 났고 그래도 열심히 우유를 먹더니 하루하루 조금씩 몸을 불려 가는 게 신기하고 기특했다.


직접 키운 것도 아니건만 그때의 난 꼭 그 아이의 주인인 듯이 행동했다. 귀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고 감동에 젖는가 하면 무용담이라도 늘어놓듯 녀석의 생김새를 세세히 묘사하며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자랑하곤 했다.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음식을 꼬깃꼬깃한 용돈으로 사다 바치고 장난감을 손수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당시 보석에 꽂혀 있었기에) 제 기준 가장 아름다운 ‘루비’ 보석의 이름을 주황이에게 선사했더랬다. “루비야”라고 부를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는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도 루비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그 정도로 7일도 채 되지 않던 그 시간은 나에게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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