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성령의 교통하심을 매순간 경험하라

일은 생계가 아니라 소명이다: 8대지 설교


##1. 도입 (Introduction)

창세기 39장 23절, 골로새서 3장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터로 나갑니다. 어떤 이는 사무실로, 어떤 이는 공장으로, 어떤 이는 학교로, 어떤 이는 밭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일합니까?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9장 23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요셉이 성공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동행이 형통의 원천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과 소명의 깊은 연결을 발견할 것입니다.


2. 본론 1: 출애굽의 목적은 예배였다


출애굽기 3장 12절, 8장 1절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로보내셔서 예배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라는 말씀은 출애굽의 궁극적 목적이 '바빌론의 노예'에서 '예배하는 자녀'로 부르심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섬기다'**는 히브리어 '아바드(עבד)'는 단순히 경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노동, 일, 수고를 포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서 애굽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불러내심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8장 1절은 더 분명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려 함이니라"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터는 단순한 생계의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3. 본론 2: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동행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세기 39장 2-3절, 21-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가 주인의 집에 있으므로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를 질투하여 노예상에게 팔았을 때, 그의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39장 2-3절은 놀라운 사실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노예 신분의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졌을 때입니다. 창세기 39장 21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동행이 계속되었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고, 요셉은 감옥 총무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함께 하심'은 '에트(אֵת)'이고, '형통'은 '찰라흐(צָלַח)'입니다. 이 두 단어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에트)이 선행될 때,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인해 바르고 선한 인도하심(찰라흐)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은 감옥에 있었지만 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그는 형통했습니다. 환경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그것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4. 본론 3: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나 성실하게


창세기 39장 4-6절, 23절


"요셉이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주인이 그를 데려다가 가정 총무가 되게 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요셉은 노예 신분에서 주인의 집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간수장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성실함이었습니다.


창세기 39장 4-6절은 요셉이 주인의 집을 맡아서 관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노예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도 그는 "내 주인의 집을 지키지 않고 그대와 함께 누워 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야 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성실함의 원천이었습니다.


창세기 39장 23절은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왜 그랄까요?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그래서 간수장은 요셉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변함없이 성실하게, 묵묵하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동행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5. 본론 4: 눈물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하라


예레미야 애가 1장 16절, 예레미야 1장 7-8절, 애가 3장 22-23절


"이는 대적이 성문들 안에서 넘어지기 때문이니라 그가 나를 괴롭게 하심이로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네게 거룩하게 구별하였고"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진실로 매일 새로우니 주의 인자가 크시도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그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1장 16절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상황은 더 악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1장 7-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모태에서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네게 거룩하게 구별하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사명을 거부하며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모르나이다"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2-23절은 너무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진실로 매일 새로우니 주의 인자가 크시도다"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매일 새롭다고 고백했습니다. 끝까지 백성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눈물 속에서도 중보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우리의 일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6. 결론 (Conclusion)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로마서 12장 1-2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은 생계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작은 일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 제물'은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일, 우리의 수고, 우리의 하루하루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일터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입니다.


7. 클리맥스 (Climax)


골로새서 3장 23-24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산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알고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 3장 23-24절은 우리에게 가장 분명한 명령을 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일터가 성전임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세상의 상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섬기다'는 히브리어 '두로레오(δουλεύω)'는 노예로서 주인을 섬기는 절대적 복종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일이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하는 일, 이 일이 정말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까? 내가 주님을 섬기며 일하고 있습니까?


일은 생계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삶은 노동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묵묵히, 충성되게 살아갑시다. 높은 자리에서든 낮은 자리에서든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일합시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8. 아멘 (Amen)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입니다. 우리의 노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일터를 성전으로 여깁시다. 우리의 일을 소명으로 여깁시다. 우리의 삶을 예배로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새로운 인자하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일할 때, 유산의 상을 주께 받을 줄 믿습니다.


오늘도 주께 하듯 일합시다. 주를 섬기듯 삽시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일터에 임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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