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임신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지만 5주 초음파를 보고 난 뒤 다음 진료까지의 2주는 너무 길었다. 정말 인터넷 검색 따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야속한 내 손가락은 종종 ‘고사난자’를 검색하고 있었다. 검색했으면 대충 보고 말 것이지, 꼭 고사난자를 연달아 두 번. 세 번 겪은 사람들의 부정적 사례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내 일처럼 과몰입하며 슬퍼했다. 극 T인간인 내가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먹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수시로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나고 케첩처럼 톡 쏘는 맛의 음식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어졌다. 출근해서 일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지난 임신에선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몸은 괴롭지만 ‘이번엔 진짜일까?’하는 기대감이 조금 피어났다.
‘이번 아기는 진짜 건강할 거다! 제발 건강하자-’라는 희망을 담아 아가의 태명은 튼튼이로 지어 보았다. 유산을 겪으며 다시 아기가 찾아오면 태명은 좀 특이한 걸로 지어보자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주 흔하디 흔한 태명을 지어주게 되었다. 막상 다시 임신하니 아가가 건강한 거 외에 다른 건 관심 밖이 되어버리더라.
그러고 어느덧 다가온 검진일. 여전히 입덧은 진행 중이었기에,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친정엄마와 병원을 찾았다. 이 날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론 아주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릴까 두려웠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 직전엔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제발 울지 말자. 다 괜찮다.’는 마인드 컨트롤만 여러 번 하기 바빴다.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초음파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베드 앞 화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봐도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냥 보고 있어도 됐을 텐데, 그냥 차마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천장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선생님께서는 초음파를 확인하시더니 “여기 심장이 잘 뛰고 있네요~”라고 말씀하시며 튼튼이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셨다.
쿵쿵쿵쿵.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초음파 화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심장 소리를 들은 친정엄마가 두 손을 입에 모으며 감격했다. 나는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서 한동안 멍해져 있다가 이내 안도했다.
‘아, 고사난자가 아니구나!’
혼자 감동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께서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어 여기 아기집이 하나 더 있네요.”
튼튼이 외에 뒤늦게 수정된 또 다른 아기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아기가 튼튼이의 주 수를 따라잡아 쌍둥이가 될 수도, 도태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건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로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단계였다. 아무튼 지금 내 안에는 아기집이 두 개. 즉 나는 이란성쌍둥이를 임신 중인 상태였다.
병원을 나와 저녁을 먹기 위해 친정집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입덧의 고통 따위는 이미 잊혀진 지 오래였다. 고사난자가 아니라니. 거기다 쌍둥이가 될 수도 있다니! 쌍둥이의 육아는 힘들 것 같지만 임신-출산을 한 번만 겪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건 몹시 매력적이었다.
‘그러면 카시트는 두 개를 사야 하나?
차도 SUV정도는 사야겠는데?’
나는 벌써 쌍둥이를 다 낳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마냥 희망적인 상상에 부풀었다. 기분이 좋아 산부인과에서 받은 초음파 영상을 그날 바로 온 가족들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불안해서 그간 계속 미루던 임신 소식을 드디어 시댁에도 전달했다. 기다리던 소식이라 시부모님께서도 매우 축하해 주셨고 나는 좀 더 내 몸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입덧과 함께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2020년의 마지막 날. 조퇴 후 집에 와서 쉬던 나는 어느 순간 배가 뒤틀리는 듯한 복통을 느꼈다. 복통은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더니 1시간 이후엔 아예 사라졌다.
‘튼튼이는 무사할까?’
불안한 마음에 바로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복통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듯했다. 임신 중에 복통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거라서 확실한 건 병원에 가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남편은 당연히 아기는 괜찮을 건데 내가 불안해하니 확인만 하러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다음날은 하필이면 1월 1일, 공휴일이라 내가 다니는 병원은 휴진이었다. 검색해 보니 다행히 공휴일에 운영하는 산부인과가 있어 좀 멀지만 찾아가 보기로 했다.
‘배만 좀 아팠지, 피 비침 같은 건 없었으니까...
별일 아니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 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