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튼튼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시댁에 들러 새해 인사를 드리고 올 계획이었다. 우선 어제 미리 예약해 둔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선생님께서는 아기집이 두 개인 걸 보고 쌍둥이인 걸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네, 다니는 병원에서 말씀해주셨어요. 근데 느리게 수정된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요?”
“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아 쌍둥이가 될 순 없겠구나... 어쩔 수 없지.’
그동안 쌍둥이의 엄마가 되는 상상을 조금 했어서 아쉽지만 그 부분은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이제 튼튼이의 상황이 궁금했다.
초음파를 꼼꼼히 확인하던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레 입을 떼셨다.
“음... 다니시던 병원이 어디라구요? 분만병원이면 공휴일이어도 운영하거든요. 다니던 곳으로 한번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예?”
“아기 심장이 멈춘 것 같아요.”
“네?”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튼튼이의 크기로 보건대 심장이 멈춘 지 며칠 지난 것 같다고 하셨다. 대략 임신 8주 3일 차쯤 성장이 멈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묘하게 입덧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입덧약이 잘 받아서 그런 거겠지 하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얼은 표정으로 대충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허둥지둥 진료실을 나서니 선생님께서 황급히 나를 다시 부르셨다.
“잠깐만요! 한 번만 더 확인해 볼게요.”
선생님께선 내가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다시 초음파 의자에 앉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다니는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 선생님 말씀대로 분만장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분만장에 가보니 내 담당이 아닌 당직 선생님이 근무 중이셨고 그분께서 살펴본 튼튼이의 상황은 똑같았다. 심장은 멈췄고 수술을 통해 이 임신을 종결할 필요가 있었다.
소파술을 하기 위해선 금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일 바로 받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다음 날로 수술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이런 상태에선 도저히 시댁에 방문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 가서 외투도 벗지 못한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남편이 여러 가지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솔직히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만 끝없이 이어졌다. 당연히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을 조금 추스르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유산 사실을 알렸다. 담담하게 전하려 했지만 이미 말문을 연 나는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엄마도 슬펐겠지만 그런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가 우는 게 더 속상해. 울지 말어.”
그 말에 오히려 더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울 일은 울만큼 울어야 끝나는 거니까.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병원을 찾아 선생님과 수술 전 마지막 체크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염색체 검사를 해보겠냐고 하셨다. 지난 유산 때는 난임병원 선생님께서 굳이 첫 번째 유산에서 염색체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하셔서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두 번째 유산이니까, 원인을 한 번 찾아보자.’
결국 검사를 하기로 했다. 검사에 동의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그 사이 접수처를 왔다 갔다 하는 배가 많이 부른 산모들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어 빨리 수술실로 도망가고 싶었다.
수술장까지 이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수술대에 누운 이후로는 마취가 바로 시작되어 눈을 뜨니 회복실에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잠시 화장실에 몹시 가고 싶은 느낌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했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몇 번을 요청드렸지만 당연히 갈 수 없었다.
거기다 이번 수술은 통증이 어마무시했다. 지난 수술은 아기집만 생긴 상태에서의 유산이라서인지 거의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배를 부여잡고 “너무 아파 너무 아파요.”하고 외쳤다. 다행히 병원의 처방으로 통증은 이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응애 응애.”
내가 수술을 한 곳이 분만병원이다 보니 내가 튼튼이를 보내고 있는 사이 누군가는 새 생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감격하는 소리와 의료진의 축하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내 병실까지 들려왔다.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이런 대비되는 상황에 놓이는 건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냥 난임병원에서 수술받을 걸.’ 하는 후회가 스쳤다. 똑같은 수술이지만 거기는 그래도 이런 기분을 느낄 일은 없었는데.
수술 후, 다행히 방학이라 며칠은 출근을 할 필요가 없어서 친정에 가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참담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데 당근마켓에서 누가 내 중고 옷들을 한꺼번에 구매하고 싶다고 대화를 걸어왔다. 그게 뭐라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와 그럼 할인해 드릴게요!”라고 신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치만 뭐 어쩔 텐가. 슬픈 가운데에서도 계속 슬플 순 없다, 내 삶은 계속되고 있는 걸.
튼튼이를 보내며, 2021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