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몇 개 나왔나욕?“
기다리던 전화라 목이 메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5일 배양 4개, 6일 배양 5개 해서 총 9개 나왔어요. “
“네? 6일 배양이요?”
6일 배양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알고 보니 느린 배아의 경우 6일에 걸쳐 5일 배양과 같은 세포분열을 이루어낸다고 한다. 5일 배양과 거~의 똑같지만 5일 배양과 6일 배양이 있다면 5일 배양이 좀 더 좋은 거라고 한다. 제 속도에 맞춰 분열을 한 거니까.
내 채취 결과를 듣고 주변 시험관을 하는 지인들이 5일 배양 부자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게 뭐라고,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만 35세 이하라 5일 배양의 경우 한 번에 한 개씩만 이식이 가능했다.
‘그러면 9번은 이식할 수 있는 거니까 그 안에 임신하지 않을까? 채취는 다시 안 해도 되겠다. 이번에 생리시작하면 이식 바로 해보자!‘
사실 난임 휴직을 시작한 처음에는 10년 만에 쉰다는 것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생각보다 무료했다. 우리 집은 회사 밀집 구역에 위치해 있는데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직장인들을 보며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교직을 대단히 사랑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일을 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구나.
그런 나였기에 빨리 이 임신이라는 과제를 끝내고 복직하고 싶었다. 그래도 기왕 쉬게된 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자싶어서 운동도 배우고, 미술도 배우고, 문화센터 클래스도 이것저것 수강해 보았다. 그렇지만 갑자기 늘어나 버린 자유시간은 여지없이 온갖 잡생각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잡생각의 끝은 늘 우울함이었다. 아, 진짜 빨리 임신해서 휴직 끝내야지하는 조급함만 가득해졌다.
생리가 시작되었고 첫 배아 이식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식 방법에는 인공주기와 자연주기가 있는데 자연주기가 자연스러운 내 배란 주기에 맞춰 이식을 하는 거라면, 인공주기는 인위적으로 약을 먹어 배란이 안되게 한 상황에서 이식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둘 중에 편한 건 인공주기다. 자연주기는 자연스러운 배란 주기를 따라가다 보니 병원도 자주 가야 하고, 또 이식하기 전에 조기 배란이 돼버리는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첫 이식은 인공주기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식을 준비하며 다시 크녹산(헤파린)주사와 아스피린 처방을 받았다. nk세포 수치를 낮춰주는 수액도 맞기로 했다.
’ 이제 다 되었다.‘
착상이야 원래 잘 되는 편이었고 유산의 원인도 알아서 대비를 해뒀으니, 이번에는 진짜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임신하면 난임휴직도 끝나는 거라고 들어서, 그럼 그땐 육아휴직을 땡겨 쓸까, 복직을 할까 하는 고민을 미리 잠깐 해보았다.
난자 채취가 여러 통증과 부작용을 가져왔던 것과 달리 배아 이식은 아무 느낌 없이 순식간에 끝났다. 너무 아무 느낌이 없어서 이게 맞나? 배아가 들어가긴 한 거야?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얼떨떨한 상태로 집에 와서는 시험관 하는 많은 분들이 하는 루트대로 온갖 보양식을 때려먹기 시작했다. 추어탕, 곰탕, 삼계탕 등등… 흔히들 시험관 하면 살찐다고 하는데, 그건 호르몬 탓도 있지만 이런 보양식 탓도 반 있는 것 같다.
이식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이번에도 병원 가기 전에 임테기를 먼저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이전 병원에서 언제나 두 줄을 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일단 흐릿한 두 줄이 나오겠지~하는 생각으로 임테기를 확인했다.
어라, 아무리 봐도 한 줄이었다. 내 시력의 문제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봐도 흐릿한 앞쪽 선은 보이지 않았다.
불량인가 하는 맘에 몇 개를 더 사서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왜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만약 내가 자연임신이 잘 안 되는 편이었다면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충격이진 않았겠지만…시험관까지 했는데 착상부터 실패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시험관만 하면, 유산 방지 치료만 받으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보통 시험관 1차는 로또라고 하지만 그건 남들 얘기라고 생각하며 이미 다 임신한 사람마냥 아무 생각 없었던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지.
나의 큰 장점은 그래도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거다. 이맘때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어서 기왕 실패한 거 백신이나 맞아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백신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접종이 무척 어려웠다. 교사들은 국가에서 빠르게 맞게 해 주었지만 혹시나 임신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던 난 맞지 않겠다고 해버렸었고, 뒤늦게 교감선생님께 읍소(ㅋㅋ)를 해보았지만 번복은 어려웠다.
결국 폰을 붙잡고 잔여백신이 있는 병원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휴직자인 나는 남는 게 시간이었기 때문에 폰 붙잡고 열심히 새로고침을 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 때는 워낙 백신 경쟁이 치열할 때라, 일단 잔여백신이 뜨는 병원을 잡는 게 중요했다. 위치부터 볼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새로고침을 돌리다가 우연히 잡게 된 병원은 서울이 아닌 하남에 있었다. 뭐 이 정도거리면 갈만하지~ 하는 생각에 하남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혹-시 모르니 마지막 체크를 하려고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에 들러 임테기를 샀다. 약국을 나와서 테스트를 하러 가던 중, 종이컵이 있으면 편하겠다 싶어 약국으로 다시 가서 “종이컵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하고 여쭈었다. 중년의 여약사님이 “어휴.. 그러지 마세요-. “ 하며 나를 만류하셨다. 아마 그분은 내가 임신을 중단하는 뭔가를 먹으려고 하는 줄 아셨던 것 같다. 내 행색이 그날따라 영 사연 있어 보였나?
“아니요! 저는 임신준비 중인 유부녀고 시험관도 하고 있고 근데 이번 이식은 실패해서 잔여백신 맞을 건데 혹시 몰라 다시 체크하는…”
이런 구구절절 설명을 할 힘조차 없어서 대충 ”그런 거 아니에요. “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임테기는 여전히 한 줄이었고 나는 바로 백신 1차를 접종했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는 정신승리를 하면서.
1차 백신을 맞은 이상 한 달 뒤 2차 백신도 맞아야 하니 아마 한동안 이식은 못할 것이었다. 8월 말에 2차를 맞으면 가을이 되어야 다음 이식을 할 수 있었다. 너무 미뤄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냉동해 둔 배아가 많아서 이식만 계속하면 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부터 여러 번 이식하다 보면 그래도 올 연말까지는 임신하지 않을까?’하는 긍정회로를 다시 돌려보았다.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자고, 나를 다독이면서.
그리고, 2차 코로나 백신 접종일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