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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코코 Oct 29. 2024

#10 두 번째 이식을 하다


   1차 접종 후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2차 백신도 별문제 없이 접종을 마쳤다. 그냥 코로나 백신만 맞은 건데 뭔가 임신을 위한 준비를 다 끝내놓은 것 마냥 마음이 후련했다. 이젠 아주 모든 행동을 임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차 접종 3일 후부터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열은 없었지만 마치 코끼리코를 열 번하고 난 것처럼, 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위에 올라탄 것처럼 어지러웠다. 거기다 추가로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고 머리를 똑바로 가누기가 힘들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석증인가 싶어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식사 중에 어지럼증이 한 층 더 심해져서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는 나처럼 백신 부작용으로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 옆 베드에서도 “백신 접종하고 어지러워서 왔어요.”라는 환자의 말이 커튼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에 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하는 묘한 동지애를 느껴 안도했다.



  응급실에서는 내게 ct와 mri검사를 해볼 것을 권했다. ct야 빨리 끝나는 간단한 검사지만 mri는 처음 해보는 거였는데 무슨 30여 분간 사방이 막힌 기기에 갇혀있어야 했다. 평소 좁은 공간에 딱히 두려움이 없는 나도 아 사람들이 왜 폐소공포증에 걸리는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응급실은 아무래도 응급 환자가 우선이다 보니 증상이 심하지 않은 나는 계속 검사와 진료가 뒤로 미뤄졌고, 9시간 만에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답과 함께 귀가할 수 있었다. 나를 간호하느라 옆에서 잠도 거의 못 자고 출근하게 된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쳐서 베드에 얼굴을 살짝 묻고 조는 남편을 보며 ‘앞으로 열받는 일이 있어도 한 번은 참아줄게’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더랬다.



  이상이 없다 하니 다행이었지만 어지럼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누워서 온갖 우울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던 어느 날, 머리 속 무언가를 끄집어낸 것처럼 어지럼증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접종하고 20여 일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동안 이 어지러움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로 막막했는데 그거 하나 없어지자 세상 다 가진 사람마냥 행복했다.


  따지고 보면 아프지 않은 무탈한 매일이 정말 행운이고 복인데 꼭 그런 일상을 잃어봐야 내가 행복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던 사람인데 그동안 임신 그거 하나 잘 안된다고 세상 고민 다 떠 안은마냥 청승 떨고 있었다. 임신준비가 아무리 중요해도 내 몸과 정신건강보다 우선일 수는 없는 건데.



  여하튼 백신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느라 난임병원은 결국 10월이 다 돼서야 갈 수 있었다. 3월에 휴직을 시작했는데 아직 이식은 한 번밖에 못하고 올해가 끝나가는 걸 보고 있자니 허무했다. 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만 내게 남은 결과는 '이식 1번, 실패'가 다였다. 남은 3개월은 바짝 달려봐야겠다는 조급함이 다시금 밀려왔다.



  2차 이식부턴 다른 원장님께 진료를 받기로 했다. 시험관에선 이런 걸 손을 바꾼다고 표현하던데 그러기로 한 이유는 우리 원장님이 안 계신 날 다른 분께 몇 번 진료를 받았는데 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그분의 세심한 진료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원장님은 워낙 바쁘신 분이다 보니 늘 초진 환자를 보듯이 나를 대하셔서 나는 내 정보나 특징을 진료에 앞서 늘 스스로 브리핑해야 했다. 그런데 이 분은 처음 보는 환자인 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인지하시고 그 부분들을 신경 쓰며 세심하게 진료를 봐주셨다. 그래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손을 바꾸게 되었다. 유명세보단 환자를 신경 써주는, 책임감 있는 의료진과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1차 이식 때 인공주기로 했다가 실패했다 보니 이번에는 자연주기로 이식해보고 싶었다. 완전 자연주기는 다낭성인 내 상황상 어렵고, 변형자연주기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배란유도제를 먹은 후 자연스러운 내 배란 상황을 따라가며 이식하는 것이다.



  변형자연주기의 단점은 부부의 계획대로 일정을 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배란이 임박했을 때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아서 계획적으로 이식일을 잡고 싶었는데, 원장님께서는 자연주기로 가기로 한 이상 인위적인 건 지양하자고 하셨다. 원장님께선 배란이 임박했을 때 배란테스트기를 수시로 써보고 테스트기에 양성이 뜨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과제를 주셨다. 극 J인간인 나는 혹시나 내가 시기를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이쯤이면 양성이 떠야 하는데, 왜 안 뜨지? 하도 온 신경을 쓴 탓인지 양성 신호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꿈에서도 내가 배테기를 들고 있었다. 아 이걸 언제 까지 해? 하는 심정이 들 때쯤 드디어 양성 표시를 봤고, 본 즉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이식 날짜를 받아왔다. 신호가 일요일에 떴으면 진료도 못 볼 뻔했는데 아슬하게 토요일에 떠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식은 역시나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다. 시험관은 임신반응 피검사를 하기 전에는 계속 주사와 약을 유지해야 하다 보니, 그전에 미리 임테기는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난번처럼 임테기는 한 줄인데, 피검사 날까지 주사는 계속 맞고 있으면 너무 비참하니까.



  2차 이식을 준비하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임신에 좋다는 걸 다 해봤던 것 같다. 배를 따뜻하게 해야 착상이 잘 된다고 해서 배에 두르는 워머도 사고, 발이 따뜻해야 한다고 해서 발에 신는 발팩도 사고, 혈액순환을 위한 마사지도 꾸준히 받았다. 한 가지 못한 건 삼신상 차리기 정도 일까? 대신 집 근처 절에 가서 수시로 기도드렸다. 한 명만 제발, 건강한 아기가 오게 해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누워만 있는 것에 지쳐 집 앞 쇼핑몰을 조심히 돌다왔는데 하도 누워있다가 걸어서 그런지 속옷에 갈색피가 살짝 묻어났다. '아 까불지 말고 집에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병원에 가기 전에 절대 테스트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피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테스트기부터 찾게 되었다. 이게 유산의 징조인지 아니면 말로만 듣던 착상혈인지 알고 싶었다. 사실 임테기가 무슨 초음파도 아니고 그걸 알려줄 리가 없는데 그때는 꼭 그게 필요한 것 같았다.


‘아 이번엔 진짜 미리 안 해보려 했는데…’


  다짐이 무색하게 임테기 봉투를 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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