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보자마자 반쯤 정신이 나가 임테기의 봉투를 뜯었다. 지난 이식 때 한 줄인걸 미리 알고서 피검사 날까지 주사를 맞는 게 얼마나 비참했는지,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냥 그때는 왠지 그걸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선명한 뒷 선 앞으로 앞 선이 엷게 나타났다. 두 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두 줄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이맘때니 일 년쯤 되었을까. 이 두 줄을 다시 보기까지 겪었던 여러 일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습관성 유산 검사, 난자 채취, 복수 천자, 배아 이식, 백신 접종, 백신 부작용 등등… 그러나 아직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감상에 젖기엔 일렀다.
일단 출혈을 본 상태이기 때문에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원장님께선 피검사를 해보기 전엔 어제의 피가 임신 때문인지 그냥 생리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하셨다. 만약 임신이라면 출혈은 원래 초기에 흔히 있는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일 피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호르몬(프로게스테론) 주사를 2회로 늘려 맞으라고 하셨다.
다음날 오전, 다행히 임신수치가 나와서 바로 병원으로 가 앞으로 사용할 약과 주사를 양손 가득가득 받아왔다. 원장님께선 평소 불필요한 군더더기 말을 절대 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그날은 진료 끝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이번에는, 꼭 지킵시다." 그 말이 진료실을 나와서도 계속 마음 한편에 묵직하게 남아있었다. 이후 임신 증상인지 두통과 복통이 종종 있었지만 최대한 진통제를 먹지 않고 버텼다. 지켜야 하니까. 이번엔 진짜로.
태명을 짓는 건 아기가 내게 각별한 존재가 되는 행위인 만큼 아기가 떠날 때 나에게 두 배의 아픔을 주는 일이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또 찾아와 준 이 소중한 존재에게 의미 부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기의 예정일이 내년 여름이었기에, 다소 직관적이지만 내년 여름에 건강하게 만나자는 의미에서 태명을 여름이라고 지었다.
여름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계절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가족 그 누구의 생일도 없고, 기념일도 없다. 그렇지만 여름이가 그때 무사히 태어나 준다면 매년 여름은 이제 내게 매우 큰 의미가 될 것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왔다.
기존 난임병원은 큰 곳이라 1차, 2차, 3차 피검사로 더블링을 꾸준히 확인했다면 여기는 작은 병원이라 피검사 일주일 후에 바로 초음파를 본다고 했다. 할 일은 없고 시간만 많은 나는 또 쓸데없는 검색과 걱정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아주 핸드폰을 뿌러뜨려 놨어야 했는데. ‘자궁 외 임신인건 아니겠지?’하는 걱정을 또 하기 시작했다. 워낙 안 좋은 상황을 여러 번 겪어서일까. 모든 게 문제없이 잘 흘러갈 거란 생각을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다음 주, 다행히 자궁 안에 예쁘게 자리 잡은 아기집을 확인했다. 세 번째로 받는 아기집 사진이었지만 이번에는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병원에서 여러 처방을 받고 있으니, 엄마가 진짜 열심히 널 지켜주겠다고 사진을 보며 다짐했다.
그런 다짐의 일환이라기엔 웃기지만 보건소에 가서 임신부 뱃지랑 여러 사은품(?)을 받아왔다. 언제나 부러움의 상징이었던 그 뱃지. 지난 두 번의 임신 때도 받을 수 있었지만 '혹시 내가 임산부라는 걸 여기저기 티 내고 다니면 부정타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아예 받지도 않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과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지난 경험을 통해 깨달았으니, 이제는 그렇게 선망했던 뱃지를 달아서 예비엄마라는 명함을 스스로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난임병원에서는 암묵적 금지인 행위가 몇 가지 있는데, 임신 초음파사진을 대기실에서 대놓고 보는 것, 병원에 첫째 아이를 데려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산부 뱃지를 보이게 달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병원은 기형아 검사로 워낙 유명해서 다른 난임병원과 달리 대기실의 반 정도는 임산부였다. 그래서 나도, 이게 뭐라고 용기를 내서, 다음 내원 때는 뱃지를 가방에 달아보았다.
진료일은 언제나 아기가 무사할까 하는 생각에 떨림 반 설렘 반으로 아침부터 잔뜩 긴장하고는 한다. 그날은 가방에 달린 뱃지를 꼭 쥐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름아 엄마에게 힘을 줘. 속으로 되뇌며 초음파를 보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아기가 잘 크고 있고 심장도 잘 뛰고 있네요."
내 걱정을 바로 불식시켜 주는 선생님의 그 한 마디에 굳어있던 어깨가 사르르 녹았다. 여름아 고마워 정말로.
여름이의 심장이 뛰기 시작해서일까, 며칠 후 입덧이 시작되고 그 강도도 점점 세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동네 병원에 가서 입덧약을 처방받았고, 온 김에 여름이가 잘 있는지도 한 번 보기로 했다. 난임병원에선 심장이 반짝거리는 거만 보여주셨는데 여기선 여름이의 심박수도 측정해 주셨다.
쿵쿵쿵쿵- 주수에 맞게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을 보니 너무 황홀해서 울렁거림이고 뭐고 다 잊어버릴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가에 있는 고깃집에서 흘러나오는 고기 냄새에 속이 안 좋아져 몇 번 우웩거렸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다 여름이가 건강해서 오는 증상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표현 웃기지만 행복한 구역질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다음 진료일. 며칠 전 동네병원에서 여름이를 잘 보고 왔기에 큰 걱정 없이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초음파를 보는 선생님의 얼굴에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이거... 입원해야겠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