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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코코 Nov 19. 2024

#12 세번째 유산


“네? 입원이요?”

“아기 심박수가 너무 떨어져 있어요. 입원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어요,”     



  임신 초기에는 아기의 심박수가 120 bpm이 넘게 나와줘야 하는데 여름이의 심박수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90 bpm이었다. 당황해서 “네?? 며칠 전 동네병원에선 120이 넘게 나왔었는데요??”라고 말해봤지만 그런다고 현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선생님께선 일시적으로 심박수가 떨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입원을 통해 최대한 안정을 취해보자고 하셨다.


  사실 임신 초기에는 산부인과에서 임산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크게 없다. 보통 병원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임신 24주는 지나야한다. 만약 내가 다른 병원에 다녔다면 거기선 굳이 입원까지 시키진 않았을 텐데 우리 선생님은 내 유산경력을 아시다 보니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집에 가봤자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몸을 쉬게 하려면 입원이 답이기는 했다.



  당일 바로 연계된 분만병원에 입원하기로 해서 짐을 챙기러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30여 분간 운전을 하면서 왜 이런 일이 또? 여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왜 갑자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별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고 안 낸 게 다행이지.

 

  집으로 가서 급한 짐들을 우선 챙기고 나머지는 남편에게 부탁한 뒤 연계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가격대가 있어도 1인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병실은 큰 3차 병원 입원실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고, 오래되고 허름한 여관?같은 곳이었다. 딱딱한 싱글 침대, 오래된 티비, 낡은 화장실이 있는 2평 남짓한 방. 창문도 매우 작고 거기서 보이는 전망이라곤 앞 빌딩밖에 없는 그런 곳. 이제 나는 한동안 여기서 수액을 맞으며 종일 누워있게 될 것이었다. 괴롭겠지만 이런 걸 통해 여름이를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입원한 날 저녁 다시 초음파를 봤으나 여름이의 심박수는 여전히 90대를 맴돌았다. 실망스러웠지만 아직 하루도 안됐으니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이틀에 한번 꼴로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자주 본다고 좋을게 없다고. 제발 모레에는 심박수가 올라가 있길 간절히 기원하며 열심히 누워있어 보기로 했다.


  

  입원 기간 동안 밤에는 남편이 퇴근 후에 같이 있어줘서 우울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낮에는 혼자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서 여름이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자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미친사람처럼 티비를 보며 까르르 웃다가도 다시 오열하며 여름아 미안해를 되뇌고는 했다.



‘여름아 미안해. 뭔진 몰라도 엄마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 ’



  그러다가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여름이를 보내는 연습도 해보곤 했다.



‘여름아 부족한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마웠어. 너를 보내자니 엄만 너무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네. 너의 성별조차도….’


  이틀 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 의자에 다시 앉았다. 야속하게도 여름이의 심박수는 그대로였다. 다만 긍정적인 소식은 여름이의 크기가 주수에 맞게 커졌다는 것이었다. 원장님께서도 “이거 희망적인데?”라고 말씀하셔서 자그마한 기대의 싹이 자라났다. 하지만 곧이어 그런 마음을 누르려고 했다. 혹시나 나중에 잘 안돼서 실망할까 봐.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실망하면 실망하는 거지, 미래에 실망할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얼마나 하찮은 방어기제인지.



  며칠 뒤 난임 병원에서 받아왔던 주사랑 약이 동나서 입원해 있던 곳에서 퇴원하고 다시 난임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게 되었다. 여름이는 주수에 맞게 계속 커지고 있었고, 심박수는 여전히 낮았다. 보통 아기의 심박수가 떨어지면 성장도 같이 더뎌지는데 여름이는 심박수는 낮은 와중에 쑥쑥 크고 있어서 원장님께선 매우 보기 힘든 케이스라고 하셨다.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되는 케이스라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늘 비슷한 내용의 진료 속에서 언제부터일까, 난 여름이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어서일까. 이 힘든 케이스가 갑자기 좋아지는, 희박한 확률의 그런 기적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여름아 미안해.

    그런데, 갈 거라면 희망고문하지 말아 줘.’


  지금 생각하면 몹쓸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미안해 이런 생각해서.’하고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하고 스스로를 난도질하고 책망하면서.



  그리고 다음 진료일. 담담하게 앉은 초음파 화면 속 여름이는 어느새 9주 차 크기로 제법 커져 있었다.


“음… 심장이 멈췄네요.”

“네….”


  마지막까지 열심히 힘을 내서 자라 줬던 우리 아기. 그런 여름이의 떠남을 확인한 날. 슬펐지만 또 한편으론 희망고문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추한 엄마인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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