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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코코 Jul 31. 2024

#1 난임병원을 찾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 사실 쯤이야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도 삶을 버겁게 하는 일이 생길 땐 새삼스럽게 저 사실이 비극처럼 마음을 두드린다. 나에게는 임신이 딱 그런 거였다. 아동 학대를 일삼는 부모, 신생아를 유기한 부모들이 연일 등장하는 뉴스를 보며 참담함과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어떤 것.      



  나는 길다면 길고 누군가에겐 짧을 수도 있는 난임 기간을 거쳐 아이를 만났다. 그 기간 동안 자존감, 인간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육아에 바빠 평소 잊고 지내지만 문득문득 힘들었던 과정들이 내 안에 깊숙한 자상으로 남아 울컥, 솟아오르곤 한다. 그럴 때는 눈앞의 아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아가에게 “엄마를, 엄마 만들어줘서 고마워-.”하고 이야기한다. 우리 딸은 무언가 이해라도 하는 듯이 빙그레 웃어준다.     


  지금부터 조금은 힘들고 어려웠던 내가 엄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해볼까 한다. 나와 비슷한 혹은 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일찍 결혼을 해서 자녀 계획을 미루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결혼 5년 차에 아이를 계획하게 되었다. 무언가 하고자 하면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하는 나는, 일단 난임 병원에 예약을 걸었다. 평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갖고 있어 월경이 매우 불규칙했기 때문에 정확한 배란일을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산부인과보다는 난임병원이 임신으로 가는 정확한 지름길을 알려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2020년 초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기 시작한 강남의 모 병원은 우리 집에서 가깝고 ‘난임’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임신 성공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첫날. 유명세에 비해 많이 낡은 병원의 외관과 내관, 병원 계단까지 빽빽하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당혹감에 휩싸였다. 내가 가본 로컬 병원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본 것 같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저 여기 있어요!”라고 내 존재를 어필하지 않으면 인파에 묻혀 누락되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              

 난임병원은 환자가 많다 보니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많은 것이 시스템화되어있었다. 우선 로비에서 접수를 하고, 초음파실로 가서 재 접수 후 초음파를 보고, (초음파를 원장님이 직접 보지 않는다.) 진료실 앞에서 또 접수를 하고 기다린다. 하필 내가 첫 방문을 했던 날이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사람도 많았어서 일사불란하게 요리 저리 움직이는 대규모 인파를 보며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내 대기 순번과 진료 속도를 보아하니 4시간은 기다려야 원장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집에 들렀다 오는 쪽을 택했다.    


      

  처음 진료를 받게 된 원장님은 내가 아는 분이 없다 보니 병원에서 알아서 지정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예약이 널널한 저연차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병원마다 유명한 원장님들이 따로 있고, 원장님들마다 강점인 분야도 따로 있다. 혹시 난임병원을 아직 찾기 전인 사람이 내 글을 본다면 인터넷을 참고하여 미리 정보 검색을 하고 병원을 찾을 것을 권한다.          



 


  비록 랜덤 하게 지정된 원장님이었지만 원장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내 상황에 공감도 잘 해주시는 좋은 분이셨다. 원장님은 우선 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여러 검사를 권유하셨고 그 말씀대로 나는 하나씩 며칠에 걸쳐 검사들을 클리어했다. 이 때 하는 검사 중 나팔관 조영술이란 아주 악명 높은 검사가 있는데, 양 쪽 나팔관이 잘 뚫려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무시무시한 후기들이 많아서 잔뜩 겁을 먹고 검사실에 들어갔다. 확실히 순간적으로 으악!$%#할 정도로 아픈 때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검사 시간이 짧아서 생각보단 참을만했다.           



  며칠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내 AMH수치는 다낭성이다보니 나이에 비해 다소 높게 나왔으며(4대) 나팔관은 한쪽이 막혀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두 곳 다 막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연임신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하셨다. (두 곳이 다 막히면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원장님은 우선 배란유도제를 먹으며 배란일을 맞추고 자연 임신 시도를 해볼 것을 권유하셨다. 나 또한 바로 시술을 시작하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우선은 유도제의 힘을 빌려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첫 달.

이 무렵 건강관리를 위해 필라테스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이상하게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내 컨디션 난조의 원인을 이래저래 찾다가 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임신을 시도한 첫 달이고, 20대도 아닌 내가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의심스러운 마음,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짐은 구석에 던져놓고 테스트기부터 사용해 보았다.       


   

오른쪽 선은 선명하게, 왼쪽 선은 흐릿하게 나타났다. 두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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