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 임신을 한 여주인공은 늘 선명한 두 줄의 테스트기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한 줄은 선명하지만, 다른 한 줄은 희미한 내 테스트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둘인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축하한다는 답장이 날아왔다. 원래 초기에는 그렇게 보이는 거란다. 친구의 축하를 받으니 진짜 임신이 된 건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니고 있는 병원에 전화해 보니, 시험관 같은 시술의 경우 임신 반응 검사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지만 자연임신의 경우 그런 건 따로 없으니 천천히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자연임신의 경우 최대한 병원에 늦게 가는 게 이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며칠을 맘카페를 눈팅하며 발을 동동 굴리다 불안한 마음에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좀 일찍 간 탓에 할 수 있는 건 피검사밖에 없었다. 이때 검사해서 나오는 수치를 hcg수치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이틀에 두 배 정도 올라야 추후 안정적인 임신이 유지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내 첫 수치는 400대로 나왔고, 원장님께서는 좋은 수치라고 하셨다.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비로소 안심이 되면서 ‘내가 진짜 임신을 하긴 했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원장님께서는 수치가 안정적으로 잘 오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2차 피검사를 하고 갈 것을 권하셨다.(사실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이렇게까지 피검사를 여러 번 하지 않는다.)
성격 급한 나는 진료를 받고 오자마자 아가의 태명을 지어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지었던 태명은 복덩이! 난임 병원을 다니자마자 너무 쉽게, 빨리 와 준 고마운 아가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당시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어수선했는데 엄마 힘들지 말라고 복덩이가 진짜 복을 가져와 주는 것 같았다. 나처럼 성격 급한 남편은 임신 소식에 들떠 출산 용품으로 무엇을 살지 계획하기 시작했고 나는 겉으론 서두르지 말라고 남편을 만류하며 내심 앞으로 근무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지 조금씩 계획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계획을 하고 있을 무렵 2차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1차 결과에 비해 수치가 2배에 훨씬 못 미치게 올라 있었다. 원장님께서는 자연임신의 경우 수치가 규칙적으로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우선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피검사를 한 번 더 해보자고 하셨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나는 결국 3차, 4차 피검사까지 하게 되었고 기다림 끝에 듣게 된 수치들 역시 좋지 않았다. 2배는커녕 매우 더디게 오르고 있었다.
‘아,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은 부정적 결과를 들어도 ‘아냐 괜찮을 거야. 우리 복덩이는 강하니까.’하며 긍정회로를 돌리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4차 피검사 결과까지 들은 지금, 이 임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내 안에 그동안 쌓여왔던 불안과 걱정이 우르르 터져 내렸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유산할 것 같아.”
내가 임신한지도 몰랐던 엄마는 느닷없이 나의 유산 소식부터 듣게 되었다. 내 전화에 놀란 부모님이 급하게 나를 찾아와 주셨다. 엄마 아빠와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울고 웃으니 또 별 거인 이 일을 잠시나마 별 거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주, 마음을 텅 비우고 방문한 병원에서는 우선 초음파를 한 번 보자고 했다. 나는 일부러 초음파실에서 눈을 질끈 감고 화면을 보지 않으려 했다. 검사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초음파를 보는 선생님(의사가 아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뭔가를 출력해서 봉투에 넣어 건네주셨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차마 그 봉투 안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봉투의 정체는 진료실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