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도&네팔여행기 3편 "아우랑바가드를 향하여"

뜨거운 데칸 고원의 열기가 전해지다

by 파르티잔


우리는 뭄바이에서 아우랑 바가드까지 야간 침대버스를 이용했다. 야간 침대버스의 침대칸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2인용과 1인용 침대가 있다. 우리는 2인용으로 되어 있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뭄바이에서 아우랑 바가드까지는 약 9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덜컹 거리며 정차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직도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다.


버스는 잠시 휴게소에 멈췄다. 나도 화장실에 가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멀리 불 꺼진 식당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들판엔 덩그러니 놓인 콘크리트 화장실 하나가 승객을 맞이한다. 지붕도 없는 화장실에 들어서니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래전 우리의 공중화장실을 보는 것 같다.


한 밤중이라 보이는 사람도 없다. 화장실보다는 밖에서 해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다른 승객들도 뜻이 통했는지 들판에 자리를 잡는다. 묘한 동지의식이 느껴진다. 시원한 밤바람이 거친 황토지대를 거쳐 나에게 불어온다.


버스 안으로 돌아가니 아내는 깊은 잠에 들어있다. 버스는 다시 시동을 켠다. 버스는 신나게 달린다. 그 속도만큼이나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든다.


다시 눈을 떠보니 동이 트고 있다. 도로 옆 넓은 들에는 밀밭이 펼쳐져 있다. 농부들이 초막처럼 생긴 집에서 하나 둘 들판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484490263_9457939754252289_3501490406293915662_n.jpg?_nc_cat=111&ccb=1-7&_nc_sid=127cfc&_nc_ohc=cfp0uHLKSdEQ7kNvgFM_L50&_nc_oc=Adgxkgq_J-sd2mJklYafGKedyXzUG6OSE5GntRK7q54j7K0V2pLbc0ORF2UiKjfmi1U&_nc_zt=23&_nc_ht=scontent-ssn1-1.xx&_nc_gid=rZhVUQ2IBfXnU_LrsVyfoA&oh=00_AYH7RxJM3zM0x2RYbICNYBeDa0vtsF3Kj9pX5jxK2gX97A&oe=67D9496A


그들의 야윈 몸이 아침 태양에 비춰 더욱 가늘어 보였다.


초막집들이 모여 있는 중앙에는 부자들이 사는 견고한 집들이 있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빈부 격차는 더욱 크다. 어느 나라나 부자는 있기 마련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다. 그들의 야윈 다리만큼이나 여행을 다니는 내 모습이 미안해졌다.


어린 시절 들에서 일할 때 대학생들이 자전거 타고 놀러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누구는 새벽부터 들에서 일하는데 저 놈들은 팔자도 좋구나"


그들도 여행자를 곱게 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과 삶의 지친 사람들의 눈에 여행자는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을 넘어 증오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82056400_9457940680918863_5755756814401947535_n.jpg?_nc_cat=110&ccb=1-7&_nc_sid=127cfc&_nc_ohc=EdP8iegc7VQQ7kNvgFC1ay-&_nc_oc=AdgphJzPX0iqkxAu77I98smNt4ExQejHcf6v8DYxo7g1nxqSHzjj5_XzaiUvPb2CRp4&_nc_zt=23&_nc_ht=scontent-ssn1-1.xx&_nc_gid=AovPRfcmiQPnQrdnhBFCwqt&oh=00_AYETC1oqE3pOXKzI_eaCxjttLvIwtQMjVd8nmmc08XmIhw&oe=67D95BD9


"열심히 일한사람 떠나라"라고 광고 카피는 말하지만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는 열심히 일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은 항상 열심히 일만 하게 된다. 그들에게 여행은 너무 먼 이야기다. 더구나 해외 장기 여행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여행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차라리 열심히 일하기를 포기하면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아우랑바가드 도착했다.


"여기가 어디야?"


"몰라. 어디쯤 가고 있겠지."


"아우랑바가드는 아직 멀었어?"


"몇 시간 더 가야 할걸."


"도착시간이 8시쯤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말을 건넸다. 버스는 알 수 없는 도시와 들판을 가로질러 묵묵히 목적지로 향했다.


새벽 공기의 서늘함과 아침 태양의 온기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틀 전 저녁 7시에 지리산을 떠나 비행기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다시 버스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은 움직이는 곳에서 잠을 청했다. 그래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겁다.


졸린 눈을 잠시 감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아우랑바가드에 도착했다면 빨리 내리고 소리친다. 엘로라 아잔타가 있는 아우랑바가드에 우리는 도착했다. 뜨거운 데칸 고원의 3월의 열기가 발끝부터 머리까지 전해졌다.


#2025년에 쓰는 에필로그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을 뜻하는 영어 Travel의 어원은 라틴어로 Travail "트라바일"이다


트라바일은 말 그대로 고생을 뜻한다.


우리말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과 라틴어의 뜻이 묘하게 딱 맞는다.


아마도 오래전 여행이라면 고생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여행은 전혀 다르다.


고급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다.


현지 맛집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멋진 바에서 술을 마신다. 여행은 점점 고생은 사라지고 편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휴양을 위해 떠났던


그 시절보다 가난한 여행이 오래 기억이 남는 것 같다.


인생도 하나의 여행이라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만족하지 못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좌충우돌하는 청년기를 지나고 나면 어느덧 중년의 편안하고 잔잔한 항구에 닿게 된다. 하지만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은 그 불안한 젊은 시절이다.


#2007년 인도여행기 3편


2007년에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것입니다.


총 11편까지 작성했고 그 이후에는 여러 가지 일로 쓰지 못했네요.


그러니 미완성입니다. 20년이 다 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니 여행에 참고하지는 마세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도&네팔 여행기2편 "혹시 사기당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