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입시가 끝났다. 9월 서울대 수시부터 시작해서 11월 수능, 1월 정시 실기전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입시가 끝났다' 의미는 연주를 마친 무대처럼 명확한 종결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문을 닫듯 분명한 경계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완료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결과가 남았다. 음악대학 입시의 마지막 문턱에서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낯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연습실에서 하루하루는 분명 손에 잡혔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이 시간만큼은 아무리 애써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허전하고 그래서 더 자주 마음이 흔들린다. 활을 내려놓은 손에는 여전히 떨림이 남아 있고, 귀에는 아직도 마지막 음의 잔향이 맴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그 지점에서 기다림은 시작된다.
음악 입시는 흔히 바늘구멍에 비유된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 순간 예술이라, 한 번에 몰입해서 잘해야 한다. 수많은 변수와, '뽑는 사람의 선택'으로 귀결되는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탄식한다. 반복적인 연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 결국은 심사위원의 마음에 닿아야만 열리는 문이다.
이 과정을 쉽게 통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었다면 '재수, 삼수, 사수'라는 어휘가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결과 앞에서 혹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결과를 앞두고 스스로를 탓할 이유는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나온 모든 시간은 의미를 가진다. 바흐 소나타의 긴 호흡을 견디며 배운 것은 음정, 박자의 정확함만이 아니었고, 하이든 전 악장을 붙들며 다듬은 것은 테크닉만이 아니었다. 매일 다른 구간에서 멈춰 서고, 다시 시작하면서 조금씩 깨끗한 소리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배운다.
최종 결과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불안해 하기보다 "연주를 완성해 보고 싶다"는 티나의 결정을 지지한다. 생살을 찢어가며 쌓아온 것들을 그대로 허물기보다는 완주한 영상을 남기려는 결심, 그것은 치열한 시간을 기록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결과 이전에 존재하는 과정, 평가 이전에 축적된 노력을 박제하려 한다. 입시는 끝났지만 오늘도 연습실에서 음악은 경쟁을 넘어 삶의 언어가 된다.
대학 이름은 여전히 크게 울린다. 그러나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고, 음악가의 길 또한 하나의 선로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음악을 바탕으로 다른 것들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연주를 넘어 창작으로, 해석을 넘어 사유로, 무대 위의 음악을 일상 속으로 확장해야 한다.
과정에서 흘린 눈물 또한 외면하지 않겠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그만큼 진심으로 임했으니 큰 아쉬움은 없다.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겪는 좌절은 오히려 안전하다. 더 큰 세상에서 감당하기에 아직 버거울 충격을, 지금 이 시기에 겪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시간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견디는 힘이다.
이제 우리는 결과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장 많은 생각이 축적되는 시기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부터가 나의 진짜 소리인가. 입시는 지나가지만,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질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6년 1월 17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