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오더하기 Jan 13. 2022

쓰레기 좀 버리고 올게요

서툼은 언제나 쓰다


순둥이 색으로 연하게 잎이 나오던 초 봄이었다. 해도 어느 정도 길어졌고 이제 추위로 움츠리기만 했던 어깨에도 살짝 봄바람이 들어 자꾸만 밖으로  내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멍하니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트랙터로 논 가는 풍경을 보는 게 한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나는 남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고 일하고 놀러 다닐 때 포대기 둘러 아기 업고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기저귀를 빨았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나도 사회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결혼할 당시 여자는 결혼하면 퇴사가 성립되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4시간 일하는 오후반 전화 상담원으로 지금 다니는 생활정보지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방을 구하는 고객, 상가를 내놓는 고객, 구인을 원하는 고객, 홍보를 하는 고객 등  가로 27.5cm,  세로 39cm의 신문에 생활하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었다. 시골의 생활정보지에 일이 뭐 그리 많겠어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정규직 선임한테 기본업무 수칙과 프로그램 설명을 들었다.


"고객사랑..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의 첫 고객과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던 시절로 하나하나 들으면서 확인해야 했다.

"야!!"
야!...... 나한테 하는 소리가 맞다.
"전화번호가 어떠....."
"내가 엊그제 구인광고를 냈는데 왜 전화 한 통도 없는 거냐고! 광고 똑바로 낸 거 맞아?"
처음 접하는 노여움과 분노가 가득한 통화를 받고 옆에서 지켜보던 선임에게로 살려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고객님 전화번호를 말씀하셔야 확인을 하지요."
너무도 정확하고 흔들림 없는 음계 솔의 톤이다.
상담을 마무리한 선임은

"10시간 일하는데 월 100만 원도 안 주는데 누가 취업하겠다고 전화를 하겠어. 맘에 두지 마, 하다 보면 늘어."
늘어? 뭐가 는다는 거지? 상담스킬이 는다는 걸까? 고객의 호통에도 덤덤해지는 심장의 두께가 는다는 걸까?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야! 이 미친 x아 우리 집 좀 오라고 와서 보라고."

"저한테 욕하는데요."

솔 톤 선임은 이번에도 흔들림 없이 응대를 이어갔다.

"오늘도 비 온다고 막걸리 드셨어요? 여기는 미친 x 없어요. 그리고 또 전화하시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비가 오는 날이면 술을 마시고 전화한다는 할머니가 나의 감정을 미치게 만들었다.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고 출근해 직원들과 하하 호호 담소를 나누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작할 나의 멋진 회사 생활의 상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쓰레기 좀 비우고 올게요."


자리 옆 휴지통에 쓰레기가 넘칠듯한 게 보였다. 아니 무언가 목구멍으로 넘칠 것 같은 것이 올라와 자리를 비우고 싶었다. 쓰레기를 봉투에 쏟아붓는데 내 감정도 불쑥 쏟아져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듯한 기분, 나는 어느 봉투에 이 기분을 버려야 할까?


이제 18년 10월 18일부터 시행하는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생겼고 대기 멘트에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 자녀입니다.' 가 나오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사회는 같이 사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늘하늘한 원피스 같 나의 얇은 상담스킬도 두터운 패딩과 같이 부피가 늘었다. 영화 2편 보면 끝나는 짧다고 생각한 4시간이 40시간 같이 느껴졌던 첫 근무 날,  20년이 지난 지금 난 팀장 되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한글 공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