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을 막 시작하던 2003년은 국내선과 국제선 스케줄이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 국제선 보다 국내선이 훨씬 힘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착륙이 너무 잦았다.
김포-제주 비행이라고 하면 보통 한 번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김포-제주-김포-제주-김포.
하루에 열 번의 이착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이 마치 파도를 타는 듯 계속 일렁였다.
짧은 비행시간 안에 신문과 음료, 뜨거운 커피와 사탕서비스까지 모두 끝내야 했던 시절이라, 만석일 때는 음료컵을 회수하다가 카트를 붙잡은 채 착륙을 맞을뻔한 적도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창 밖엔 늘 구름뿐이라 내가 지금 제주로 가는지 김포로 돌아오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었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추석 연휴 국내선 스케줄이 잡혔다. 그때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해 아직 통장에 찍히는 월급도, 회사라는 공간도 어딘가 실감 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절에 근무한다는 건 생각보다 서러웠다. 혼자 다른 리듬으로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방인의 소외감을 추스르고 나선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날도 모든 비행이 만석이었다.
미친 듯이 서비스를 마치고 제주에 도착해 하기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행복한 추석 명절 되십시오"
추석이라서였을까. 그날은 유난히 많은 승객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 와중에 무뚝뚝한 얼굴의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릿느릿 통로를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 밝게 인사를 드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순간 당황해서 다시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 그 무표정하던 얼굴에 아주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무섭게만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인자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놀라 내려다보니 노랗고 따뜻한 귤 하나가 있었다. 주머니 속에 오래 있었던 모양이었다.
'명절에도 고생이 많구먼.'
'덕분에 힘든 것도 잊었어요. 감사합니다.'
말없이 건넨 귤 하나에 오고 가는 마음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귤 하나로 세상의 리듬과 내 삶의 리듬이 잠시 같은 박자로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고향으로 향하는 방향과 내가 서 있는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다.
그날 받은 귤 하나는
오래도록 손에 남아
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온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