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환상>

의료개혁의 허상 2.

by 이에누

전공의 한 명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눈 밑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지우지도 못한 채 말했다.
"우리는 이미 가득 찬 컵이에요. 그런데 물을 더 부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말 한마디가 그의 현실을 전부 설명하고 있었다. 터질 듯한 스케줄, 끝없이 이어지는 긴급 호출, 쉬지 못한 채 연속으로 서야 하는 당직. 그 속에서 그는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었다.

비단 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의료 현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병원 복도를 걷다 보면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 피로와 긴장이 섞인 공기, 지친 눈빛들이 스며드는 공간. 그 안에 '사람'은 있는데, 정작 정책에서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떠나고 숫자만 남았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의료 개혁의 중심에는 '숫자'가 있다. 10,000명.


5년 내에 의대 정원을 10,0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은 얼핏 듣기에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부족한 것을 채우면 해결된다는 발상.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숫자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숫자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전공의의 휴식 없는 손길, 밤을 지새우며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못해 결국 떠나는 사람들. 그 숫자가 감추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삶의 무게다. 숫자는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린다. 정책이 인간을 다루는 데 실패한다면, 그 숫자는 차가운 계산일 뿐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필수 의료가 갑자기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소아과 대기실이 갑자기 활기를 띠거나, 지역 병원들이 차고 넘치는 것은 아니다. 소아과 병동의 침대가 다시 채워지거나, 지역 병원의 꺼져가는 불빛이 다시 밝아지는 일도 아니다.

필수 의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그야말로 고사 직전이고, 응급실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줄 위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의사들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들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의대생들도 두려움을 품고 있다. 새로운 정원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실습 기회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충분히 치열하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정부와 의료진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단절되고 있다. 양측 모두 소리를 높이지만, 그 소리는 서로를 향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소음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의 열악함을 개선하려면, 숫자가 아닌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적절한 보상과 근무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의료진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숫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의료 개혁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람'을 보고 있는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 진료실에 앉아 기다리는 환자, 그리고 그 환자의 가족들.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정책은 공허하다.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

숫자로 요약되지 않는 이야기들, 우리가 놓쳐온 그들의 삶을 떠올려야 한다. 개혁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나 숫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숫자로 채울 수 없는 빈틈이 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의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숫자만으로는 현실에 깊게 뿌리내린 문제를 치유할 수 없다. 숫자로 문제를 메우려 하면 오히려 더 큰 공백이 생길 위험이 있다. 늘어나는 학생들이 설 자리, 배우고 익힐 기회, 나아가 그들이 실제 현장에서 기여할 환경이 없다면, 늘어난 숫자는 허울에 그칠 뿐이다.

병원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진료실 안에서 환자와 마주하는 의사, 그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 그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 하지만 숫자로 요약된 정책은 이 사람들을 잊는다. 의사들이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보상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끝없는 스트레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사람은 떠난다. 사라지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다.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병원의 복도에서 지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응급실 문턱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환자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의 자리를 고민하는 의료진의 고뇌. 그것이 보이지 않는 정책은 공허하다.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환경에서 시작된다. 의료진이 그들의 자리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환자들이 기다림 끝에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가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 이런 것들이 핵심이다.

숫자는 중요한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진짜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 위해서는, 그 도구를 다루는 손이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맞잡은 손이 아니라, 멀리서 각자의 언어로 소리치는 모습으로는 진정한 개혁을 이야기할 수 없다.




숫자 너머의 본질

숫자는 명확하지만, 숫자로는 얼굴을 그릴 수 없다. 우리가 진짜 바라봐야 할 것은 그 숫자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전공의의 무거운 발걸음, 환자의 간절한 눈빛, 그리고 지역 병원에서 언제든 무너질 듯 서 있는 의료진의 어깨. 이제는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개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숫자로는 채울 수 없는 빈틈이 있다. 그 빈틈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 이 글은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을 중심으로 정부의 정책 의도, 의료계의 반발,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계산을 분석하려는 시도였다. 단순히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또는 "정부가 국민을 위한 개혁을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정책의 타이밍과 정치적 의도를 고려할 때 어떤 맥락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가졌던 고민과 기록의 과정들을 Q&A 방식으로 정리해 본다.




[Q & A]


Q.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A.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기습적으로 발표했고, 이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극심해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걸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 특히 "왜 지금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의사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이슈를 띄웠을까? 단순한 정책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요소가 작용한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풀어가면서 글을 쓰게 됐다.

Q. 글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A.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책이 단순히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즉, 정책의 필요성과 별개로, 정부가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이 이슈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도 얽혀 있어서 단순히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도 짚고 싶었다.

Q.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A. 편향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런 논란은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쉽게 ‘의사 vs. 정부’의 구도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정당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고, 정부의 발표 방식에도 전략적인 의도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 팩트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면서도,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했다.

Q. 정치적 맥락을 강조한 이유는?

A. 정책은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항상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부가 의료 시스템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여론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예를 들면, 국민들에게 "우리는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면서, 의사 집단을 ‘기득권 수호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도 선거철마다 특정 이슈가 갑자기 부각되고, 여론전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Q. 의사들의 반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A. 의료계의 반발을 단순히 ‘기득권 지키기’로 몰아가는 건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물론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인프라 부족, 수련 시스템 문제, 지역 의료 환경 개선 없이 숫자만 늘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특히 지방에서 의사가 부족한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정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의료 환경이 열악하고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지방 병원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료계가 주장하는 ‘정원 확대보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봤다.

Q.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에서 문제점은 없었을까?

A. 가장 큰 문제는 ‘속도전’이었다. 정부가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갑자기 발표를 하면서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보통 이런 중요한 정책은 의료계, 학계, 시민사회와 협의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발표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특히, 의료계와의 협의를 거쳤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 없이 ‘숫자’만 발표한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Q.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논란이 뜨거운 이슈인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정부 정책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 이면의 정치적 계산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화롭게 풀어야 했다.
또한, 의사들의 반발을 설명하면서도, 독자들이 공감을 잃지 않도록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왜 이 반발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가’라는 시각도 포함해야 했다.

Q. 보완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다른 나라의 사례를 더 비교해 보면 좋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독일은 의료 인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한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다뤘다면 더 설득력 있는 글이 되었을 것 같다.
또한, 단순히 정책 비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일까?’라는 대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Q.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어떤 이슈든 단순한 찬반 구도로 바라보지 말고, 더 깊이 생각해 보자는 거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논란도 ‘의사들이 반대한다 vs.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한다’는 식으로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 추진 과정의 문제점, 이해관계자들의 입장,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전략까지 살펴보면,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훨씬 더 복합적인 문제임을 알게 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정책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지 않고,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가려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앞으로 이런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어떤 방향성을 가져갈 생각인가?

A. 앞으로도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서,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특히 정책과 정치가 맞물릴 때, ‘이 정책이 정말 필요한가?’, ‘정책 추진 과정에 문제는 없는가?’,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접근하려 한다.
또한, 논란이 되는 이슈일수록 감정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팩트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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