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모두의 풍요를 바라지 않는다.
"농업은 필요한 만큼 발전해 왔다. 그 필요를 정의한 것은 소수의 사람들."
옛날에 아는 사람이 "다 같이 어울려 사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현실과 정 떨어진 말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농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왜 현실과 떨어진 이야기인지 글을 써보려 한다.
농업이 필요한 만큼만 발전해 왔던 순수 본질적인 사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하루 세끼 먹는 양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양을 소비할 수 없어 필요한 만큼 발전해 왔다."
또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중세시대 유럽이나 산업혁명 시기에는 농업 기계화, 인공 비료 계발 등을 통해 인류 사회에 필요한 만큼 발전해 왔다. 다만 문제점도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필요 이상의 농업 발전으로 생산량이 인류가 필요한 양의 이상으로 공급되어 '곡물 가격 폭락' '농산물 폐기' 같은 손해를 보기도 하였다.
순수 본질적인 사유에 반해 내 생각은 다르다. 현재 21세기는 소리 없는 전쟁이라 하여 관세 전쟁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나는 또 하나의 전쟁으로 '농업, 농산물 전쟁'을 언급하고 싶다.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 중 식사는 가장 첫 번째 문제라고 생각한다. 옷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식사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살기 위해 식사를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 식문제가 해결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분명 사회의 성장 속도는 정체된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며 농업 발전이 뒤떨어진 개발도상국에게 식량 지원, 농업 기술 지원을 해버리면... 누구에게는 도움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발전을 늦히는 일 일지도 모른다.
농업은 또 하나의 전쟁터다. "총 대신 기술과 시장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군대"나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의 농업에서의 전쟁은 분야는 '양적 전쟁'과 '질적 전쟁' 두 갈래로 나뉜다.
전자는 농산물의 양, 생산량으로 승부를 보는 전쟁.
후자는 양보다 기술력, 신뢰를 이용한 전쟁으로 우리나라가에 후자에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더 자세히 보면 대한민국 농업은 양적 문제를 극복하고 선진국이 되며 질적인 퀄리티 단계로 넘어왔다. 사람들이 배고픔의 문제를 겪지 않게 되니 이제는 비싸도 그만큼 영양 있고 새로운 식품을 찾게 되는데 나는 마치 '명품'을 떠오르게 된다. 명품의 가치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에서 시작된다. 비싸기 때문에 아무나 살 수 없지만 모두에게 입소문 나고 동경하는 상품인데 농업의 기술력을 발달시켜 생산량을 높이면 그 가치는 사라진다. '샤인머스캣'이 딱 그에 맞는 예가 아닌가? 새로운 품종이 개발하는 기술은 발전해도 생산량을 높이는 기술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분배 문제는 더 이상 대두되어서 안 된다. 세계는 윤리를 이야기하지만 실세는 권력과 이익으로 움직인다. 농산물과 농업 관련 지원이 윤리적 도움이라는 명분으로 '누가 주고 누가 받을지' 또한 결정짓는 것 또한 구조적 장치다. 이러니 다 같이 어울려 사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라. 밥그릇에 밥을 언제까지 챙겨주길 바라나. 스스로 밥 짓는 법을 배워라."라고.
https://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183716&utm_source=chatgpt.com
- 기술력 전쟁 (출처 : '청년일보')
https://www.wikitree.co.kr/articles/1080170?utm_source=chatgpt.com
- 샤인머스캣에 관한 기사 (출처 : '위키트리')
https://ourworldindata.org/grapher/value-of-agricultural-production
- 세계 농업 수출량 조사 (출처 : 'Our World in 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