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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 이제부터 진짜 시작!

by 느긋

지난 3월부터 시작하였던 캘리그래피 10회 수업을 무사히 수료했다. 직장인들을 위한 반이라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 수업이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듯하여 그만큼 캘리그래피에 빠져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10명 정도의 회원분들과 인상이 참 좋은 강사님의 수업은 내 생활에 활력을 넣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뭔가에 몰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에 가져보는 감정이었다. 덕분에 두 달간은 직장인의 만성병인 월요병도 없었다.


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었던 강좌라 마지막 날에는 멋진 수료증도 받을 수 있었다. 10회 수업동안 지각이나 결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수료증을 더 값지게 받았다. 이 날은 강사님이 수강생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였다. 그 선물은 캘리그래피 무드등으로 멋진 글귀를 쓰고 조명을 켜면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글씨를 쓰면 강사님이 그에 어울리는 그림도 그려주셨다. 멋글씨에서는 글씨가 제일 중요하지만 그림이 그 글씨를 한껏 돋보이게 만들어주어 매우 신기하였다.


지난달에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초등교사들을 위한 캘리그래피 연수도 온라인으로 병행해서 들었다. 강사님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많아 좋은 경험이 되었다. 특히 수채 캘리그래피의 세계는 무궁무진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나미 플러스펜으로도 그럴듯한 수채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서 나 같은 초보자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업장면도 있었다. 펜으로 쓱쓱 그은 후 몇 번의 붓터치로 아주 멋진 꽃이 완성되었다. 교사들의 직업병이 또 도졌는데 어떻게 하면 수업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것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해보게 하고 싶었다. 미술시간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곳곳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캘리그래피를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접근해보아야겠다.

무드등과 수료증

10주 동안 수업을 받고 연습한 결과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3급 자격증도 곧 나온다고 하니 뿌듯하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연습도 하고 엽서와 책갈피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선물할 때마다 글귀에서 감동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지인들을 보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주는 기쁨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양가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며 봉투에 좋은 글귀를 써서 드렸더니 잘 썼다며 감탄하시고 좋아하신다. 작은 정성을 더 했지만 돌아오는 건 더 크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나도 힐링이 되고 주변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들어줘서 더없이 감사하다.


자격증을 위한 포트폴리오

보통의 수업 분위기는 매우 조용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강의라서 그런지 글씨를 쓰는 동안 수강생들끼리 서로 칭찬하면서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대부분 40대-60대 중년의 여성분들로 캘리그래피를 하는 동안만큼은 다들 소녀가 되는 듯 보였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그동안 달라진 점이나 소소하게 행복했던 일들을 재잘거린다. 글을 쓰면서 들려오는 말들이 나를 평화로운 행복으로 데려다준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과정 자체를 모두들 즐기는 듯 보였다. 강사님들의 칭찬과 격려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여기서도 강사나 교사의 직접적인 언어뿐 아니라 눈빛, 말투, 몸동작과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도 매우 중요함을 또다시 느꼈다.


요즘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나의 빠릿빠릿한 성격에 맞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고 그것을 한숨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나도 모르게 표현을 많이 한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세상 다정하고 온화한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새끼에게는 그런 따듯한 눈빛을 보내주지 못했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당연한 건 없고,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라고 글귀만 썼지, 정작 일상에서는 실천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반성하였다. 그래서 노력하고자 다짐한 게 아침마다 아들을 배웅하며 '사랑해! 무조건!'이라는 말을 한다. 평소 예민하고 성격 급한 엄마를 둔 탓에 자존감이 많이 깎였을 우리 착한 아들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사랑한다고 표현을 해준다. 존재자체로서 소중한데 이 당연한 사실을 매번 까먹는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마음도 다잡고 아들을 향한 눈빛도 따듯하게 만들어야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성스러운 캘리그래피 선물을 받으면 굉장히 고마워한다. 때때로 우리 5학년 친구들에게도 수채캘리그래피 엽서 선물을 해주는데 서로 가지고 싶다며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래서 우리 반 화폐인 콩을 많이 모은 사람이 가져가는데 대부분 부모님께 선물을 하겠다고 한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많은 만큼 수업시간에 이를 적용해보려고 한다.


곧 있으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계기교육을 하고 민주주의, 연대, 인권, 공동체정신, 나눔 등의 가치에 관한 글귀를 캘리그래피로 써보는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부터 잘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보고 따라 쓸 수 있도록 예시안을 미리 준비하였다. 덕분에 나도 캘리그래피 연습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학교 전체적으로 계기교육 및 행사를 크게 하는데 이번에는 학년별로 오월쿠키도 먹고 민주주의를 위한 다짐 한 마디씩을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한 보드판도 만들어 보았는데 예전에 배운 pop와 캘리그래피를 적절히 섞어 판을 만드니 동학년 선생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한 시간의 교담시간을 이용해 빨리 만들었는데 좋아해 주어서 이번에도 역시 캘리그래피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 곳곳에서 사용할 수 있고, 특히 교사로서 쓸모가 많아 너무나 뿌듯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수업에 적용되는 캘리그라피

캘리그래피를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매우 넓어 재미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드등, 엽서, 책갈피, 액자뿐 아니라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섬유에도 글을 쓸 수도 있다. 앞치마에 좋은 글귀나 그림을 그리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니 내 삶이 보다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내향인으로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운동도 좋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다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나로서는 이 취미를 갖게 된 것에 엄청 감사하다.


아직 보고 따라 쓰는 수준이고 나만의 글씨체를 갖기위해 앞으로 많은 연습이 이루어져야겠지만 이 과정 자체가 즐거울 것 같다. 욕심내지 않고 한 걸음씩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스타일도 생길 거라 기대해 본다.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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