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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아 Jan 24. 2023

그래도 짬은 좀 찬 막내

그래도 괜찮은 막내


 그래도 짬은 좀 찬 막내


그래도 괜찮은 막내

흔히들 말하는 짬이 좀 차서 가장 편해진 것이 있다면, 선배들에게 생각이나 고민을 보다 자연스레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일과 관련된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도움을 받는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애초에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툭 던지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리고 다음 과정을 더 담대하게 진행할 수 있다. 선배들도 본인의 마음을 나눌 때가 있지만 내 빈도수가 훨씬 높은 듯하다. 이것도 아직 막내라 누릴 수 있는 특권이려나?



  “어떤 영역에선 느릴 때도 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명확하게 자기 걸로 만들어. 하나 알려주고 어느샌가 보면 네 색깔로 또 잘 해내더라고.”


최근 팀장님한테 들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다소 추상적인 이 말은 ‘내가 일이 느린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별안간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는 공모사업 신청 서식을 채우는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그날도 내용을 쓰다 진도가 느려져 왈칵 짜증이 났다. 어쩜 이렇게나 익숙해지지 않을까! 욱한 성질을 못 참고 옆에 있던 팀장님에게 토로했다. 공모사업 신청은 왜 이리 어렵기만 한지, 선배들도 매번 멈칫대는지 물었다. 일종의 하소연 같은 거였다.


팀장님이 특별히 해결책을 제시해 준 건 아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서 감정이 진정되는 효과를 봤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고민을 깊어지게 만들고 시간을 지나치게 쓰도록 한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했다면, 팀장님의 답은 쉬워지지 않는 영역으로부터 차분함을 잃지 않도록 잡아줄 것 같다. 아무튼 중고 막내는 이렇게 본인의 위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혹시나 선배들이 다짜고짜 고민을 토해낼 때마다 ‘얘 또 시작이네.’ 하며 귀찮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나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이 행동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고민을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나누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특권이 맞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때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능숙하게 해나가고 있다. 나와 다른 의견에 욱해서 주장을 밀고 나가기도 한다. 선배들에게 내 도움이 필요한 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기쁜 일이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짬이 차야 가능한 일이니까. 선배에게 잔소리 같은 오지랖도 부리려는 걸 보면 시간이 그냥 흘러만 간 건 아닌가 보다. 목소리를 크게 낼 줄 알면서 특권을 누릴 수도 있는 ‘중고 막내’는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자리가 아닐까.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모르니 아낌없이 이용해야 한다.


베테랑 선배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일이 주어지고, 새로운 걱정이 생기는데 나라고 오죽할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실수를 하거나 일이 진전되지 않거나 혹은 완성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분함이 밀려올 거다. ‘여태까지 뭐 했지?’,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하는 생각도 계속할 것 같다. 지금처럼 서로서로 돕고 어떻게든 끝내면서 나아지면 된다. 짬이 더 차면 아마 고민하는 시간이 줄긴 줄겠지.




‘내 레벨이 0에서 100 사이 어디에 와 있는가?’

글이 끝날 때쯤엔 답을 내릴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다만 일지에 가까운 이 글들을 요약해 보면, 매번 ‘왜 완벽하지 못할까’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면서 보다 나아지는 듯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능숙해지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짬이 차긴 했네 싶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드물긴 하니까. 사업 파트너나 어른을 대하는 기술이 늘었고, 사회생활을 할 때 중간은 가는 방법도 배웠다. 본인이 가진 것들을 친절히 나눠준 선배들이 있어서 돈 주고 못 배울 노하우들도 전수받았다. 바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도 제법 잘하는 것 같다. 협업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수월해지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 횟수도 늘었다.


0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얻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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