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막내
[3년 차 막내가 억울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그래도 괜찮은 막내
간혹 오랜 시간 막내 생활을 하는 게 억울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억울하진 않다. 그다지 억울할 일이 없다고 해야 하나. 종종 분한 일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막내라서가 아니라, 어느 위치에나 생기는 직장인의 분노 같은 거다. 3년이나 일한 사람을 시켜 먹기만 하지도 않고 ‘어쨌든 어리니까 막내답게 행동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럴 나이가 아닌데 우쭈쭈해 주는 선배들에게 고마워서라도 막내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긴 한다만. 오히려 챙김 받을 때가 더 많다는 소리다. 우리의 리더와 선배들은 책임자로서의 내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막내로서의 나를 본인들 방식대로 보듬고 격려해 준다. ‘중고 막내‘ 위치는 이렇게나 메리트 있다.
선임이 되고 싶긴 하냐는 질문엔 글쎄, 잘은 몰라도 후배가 들어오면 재밌을 것 같긴 하다. 선배로서 후배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면서 얻는 것도 분명 있을 테니, 기대되는 부분이 적진 않다. 때에 따라 필요한 조언을 해주고, 경험의 폭이 좁은 막내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견문을 넓혀준 선배들처럼 행해보기도 하고. 선배들이 나를 보면서 느꼈을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또 다른 영역에서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막내 자리를 내어줄 준비는 되어있는데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결과물로 남은 십수 권의 소식지와 애뉴얼 리포트, 캠페인 기획자료와 성과, 갖가지 홍보물은 지난 시간을 보상해 주는 귀한 업적이다. ‘그래, 나 이것도 만들었지, 저런 경험도 있었지….’ 가시적인 자료들을 보면 처음에 비해 그래도 많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이나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스킬에 대해서는 딱 잘라 얼마만큼 잘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처음보다 능숙해졌다. 그러니까 이름만 막내일 뿐, 억울할 이유가 없다.
왜 굳이 이렇게 호되게 당하면서 일을 배워야 할까? 남들도 이럴까?
난 늘 이게 고민이었다. 깨지고 또 깨지고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다. 그래도 눈물 쏙 빠지게 당한 후에는 다신 그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걸 보면 그 시간이 훈장이구나 싶다. 3년 차 중고막내로서 터득한 것들이, 앞으로도 어디에 있든지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긴 인생을 산 건 아니라 삶의 지혜나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이 많아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도 아니다. 도리어 3년 넘게 한 공간에서 머물다 보니 만나는 사람과 해온 일이 한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선배들과의 일화가 어느 글에나 있고, 자잘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도 같다. 혹여 우스워 보일지는 몰라도 길지 않은 인생에 의미 있는 사건이고 사람이라, 모든 영역에 녹아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잘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기억나는 대로 적기 시작한 이유는
지나간 시간을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할까 봐, 하루빨리 남겨 놔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레벨 0에서 시작한 신입 막내가 어느덧 3년 차 중고 막내가 됐다. ‘0에서 100까지 레벨이 있다면 나는 어떤 숫자일까?’에 대한 답은 글의 끝에 와서도 결국 내리지 못했지만, 그 시간을 정리해 둔 것으로도 글의 기능을 충분히 다했다. 바라건대 글을 읽고 ‘이런 삶도 있구나.’ 한 명이라도 알아준다면 금상첨화겠다.
글에 미처 다 적지 못한 근무 일지를 다시 찬찬히 훑어봤다. 물렀던 막내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꽤나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입 때의 생각이 적힌 글 때문에 화끈거리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유치해 보이는 글일 수 있다. 나도 경력이 더 쌓인 뒤 꺼내 읽으면 아마 부끄러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차 강조하자면, 값진 시간을 간략하게나마 요약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내가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에 대한 답 역시 애써 내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잘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어딘가 있을지 모를 중고 막내를 대변할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언젠가 끄적거려 놓은 근무일지에서 찾아냈는데, 그 끄적거림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팀장님은 해결사, 선배는 조력자, 그럼 난 어떤 존재일까?
우연히 그 생각을 선배들과 나누던 날, 팀장님은 나를 ‘스펀지’라고 표현했다. 아이가 부모의 말과 행동을 흡수하는 것처럼 모든 걸 빨아드리는 힘이 있다는 대충 그런 의미였다. 흘려보내는 것을 지나치지 않고 잘 습득하는 것도 능력이라나? 그땐 그냥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썩 마음에 드는 비유다. 시간이 흘러 물 좀 먹은 스펀지는 처음처럼 잘 빨아드리지 못할지언정, 무언가 윤기 나게 닦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