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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17. 2024

꿈을 닮은 사람과 여행을 했다.

12월 초,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매섭게 추워 출근을 하기 싫어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다 겨우 출근했다.

이런 날씨면 이번 주말은 가이드는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은 행사가 많이 없어 가이드들에게는 살짝 꿀맛 같은 휴식의 기간이기도 했다. 가이드 일을 좋아했지만, 평일에는 회사일에 주말에는 가이드일에 치이게 되면, 한동안은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불속에서 겨우 나온 나는 출근길 한창 이슈가 되고 있던 연예 뉴스를 보느라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기를 한참, 오랫동안 열차가 안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앞 스크린 도어에 있던 광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12월 초이니 만큼 특별하지 않은 내년 신입생을 뽑기 위한 대학 광고판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다른 대학교의 광고와는 달랐다. 광고에 있던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건, 그 시점으로부터 4년 전이었다.


내가 다니던 여행사는 봄 성수기와 가을 성수기 총 2번에 걸쳐 신입 가이드를 뽑았다. 신입 가이드를 뽑으면 총 3번에 걸쳐 선배 가이드 행사에 답사를 다녀오는데, 그즈음 1년이 넘은 나는 신입가이드들에게는 다른 선배들 보다는 편하지만 물어볼 것이 많은 가이드들에게 속했다. 내가 배정받은 대관령 양 떼목장 코스는 겨울에는 필수 코스였기에 신입들이 답사를 오는 필수 코스였다. 나는 그즈음 매주 신입 기수들을 교육하느라 신입기수들을 배정받는데 이골이 난 상태였다.  오로지 40명을 케어하는데도 벅찬데, 매주 오는 신입 기수들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친구는 있기 마련이다. 그 친구는 살가웠고, 내가 하는 말 중 시시콜콜한 것도 메모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꼭 물어보고 넘겼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그 친구 혼자 내 행사에 답사를 오게 됐다. 내가 가장 자신 있던 강화 석모도 코스였다.

강화 석모도는 내가 가이드를 시작하고 약 1년 동안 매주 출발했던 코스였다. 서울에서 가깝고 또 지금은 다리가 건설됐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배를 타고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였다. 선배 가이드들을 비롯해서 동료 가이드들은 내 성을 따서 별명으로 신모도라고 부를 정도로 나는 강화 석모도를 정말 자주 갔었다. 강화 석모도 코스에 가장 메인 코스는 3대 기도도량으로 꼽히는 보문사 등반이다. 보문사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눈썹모양을 닮은 아래 그려진 석가모니가 일품인 절인데, 거기서 내려다보는 서해 바다가 일품이어서 인기가 높은 절이다. 한낮보다는 살짝 노을이 질 때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도 이 낙조가 가장 아릅답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쉽게도 여건상 낮에 눈썹바위를 올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손님들은 눈썹바위까지 올라가는 그 계단을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응원을 하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올라갈 수 있게끔 독려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이왕 이곳까지 와서 이 모습을 못 보고 가는 것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었다. 얼추 고개들이 다 올라온 듯 해 한 팀 씩 가장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을 찍어주다 보면 고개들의 취향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와 고객들이 원하는 장소가 다르고, 고객들이 좋다는 사진과 내가 좋다는 사진이 다르다는 것을 볼 때 여행의 정답은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고객들이 눈썹바위를 다 구경하고 내려가자 마지막까지 사진을 찍어주던 나와 그녀도 슬슬 계단을 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가이드가 왜 하고 싶어요? "

나는 참 궁금한 게 많았다.

" 저는 여행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가이드가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지원했어요. "

그녀가 답했다. 현실 도피성으로 가이드를 선택했던 내 이유와는 살짝 다른 그녀의 대답이었다.

"여행 다닌 곳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아직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한복을 입고 세계여행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한복이요?"

"저는 의상디자인학과인데, 한복이 너무 좋아요. 해외여행 갈 때 꼭 한복을 입고 여행을 가고 싶어요, "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한 것 중에 괜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 친구가 말한 그대로 그녀는 본인이 다닌 학교의 광고 모델로 한복을 입고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사진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한창 인기를 끌던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나오는 대사가 있다. 같은 교도소에 있던 주인공과 조연이 시간이 흐른 후 식당 사장과 깡패로 만났을 때 깡패의 독백이다.


"그와 나는 시간의 농도가 다르다"


꿈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하지만 꿈은 누구나 이룰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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