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괴산에는 산막이 옛길이 있다. 산막이옛길은 괴산에 있는 트레킹 길이다. 괴산 산막이 옛길은 다른 트레킹길과는 다르게 실제 과거의 사람들이 다녔던 구간을 현재 사람들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길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막이 마을까지 총 4KM 정도 되는 길을 최대한 옛길 그대로를 제현하기 위해 나무테크 등 친환경 공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다른 여행지와는 다르게 둘레길 코스에서는 손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가이드들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나는 고객들과 대화하면서 둘레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쉽게 보지 못하는 풍경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버스에서는 시간관계상 할 수 없는 관광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과 보폭을 맞춰 걸으면, 일이 아닌 진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막이 옛길 초입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는 이쪽보다는 반대쪽 배경으로 찍어야 예뻐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손님들은 내가 정해준 위치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자 뿌듯했다.
사진에 대해서 한참을 얘기하는데 뒤쪽에서 혼자 온 손님이 걸어갔다. 나는 짧게 사진을 찍어준 일행에게 목례를 하고, 그 손님을 향해 걸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다.
"가이드님 우리 또 만났네요?"
어르신은 나를 반가워했고, 나는 당황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한 명이고, 고객들의 인원은 많기 때문에 한두 번 본 고객들은 사실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어르신 제가 최근에 너무 많이 여행을 다녀와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수 있죠. 이해해요. 근데, 내가 보낸 팩스는 받았어요?
갑작스러운 어르신의 말에 불현듯 며칠전일이 생각났다.
몇 주 전 월요일 여행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었다. 월요일에는 주말여행에서의 손님들의 피드백이 여행사 사무실로 전달이 되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필요한 피드백이 있을 경우 종종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월요일이 조금은 무서웠다. 전화를 받기 전 주말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복기하고, 전화를 받았다.
"잠깐 통화돼?"
"네 실장님 말씀하세요."
"가이드님이랑 여행 다녀온 게 너무 좋았다고 칭찬이 가득한 글이 팩스로 들어왔어"
"네?'
"어르신인데, 칭찬하고 싶으신데 홈페이지에 글 올리는 방법을 모르셔서 팩스를 보내셨대. 그 팩스 읽는데 내가 다 뿌듯하더라. 칭찬 후기는 올라와도 팩스는 처음이야."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새롭게 시작해 이제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일,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조금씩은 불안해지고, 나와 여행을 갔던 손님들이 불만이 나오면 어떻게 할까라며 늘 걱정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 팩스는 지금 내가 하는 방식이 옳다는 증명 같은 거였다.
사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결정들은 내가 아닌 늘 누군가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아야지만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그래야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팩스로 전달된 고객의 칭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과 같았다. 어르신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산막이 옛길을 걸었다. 어르신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하셨고, 나보다 걸음이 빠를 정도로 건강하셨다. 어르신과의 대화는 내 칭찬으로 시작해서 내 칭찬으로 끝났다. 어르신 눈에 젊은 내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게 좋게 보이셨던 것 같다. 그 칭찬들이 나에게는 꽤나 달콤하게 느껴졌었고, 어르신과의 트레킹은 그 어떤 고객과의 여행보다 즐거웠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나에게 어르신의 팩스 같은 칭찬을 스스로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은 모두 인정욕구가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함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매일이 불안했던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그때 너는 꽤 잘하고 있었어"
그리고, 아직까지도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매일이 불안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