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본 글은 영화 <너와 나>를 감상하신 후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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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이름'이 있다. 많이 쓰고 생각해 줘야 정이 붙고 애정이 생긴다. 자주 부르는 말일수록 애정하는 말이 된다.
내게도 그런 말이 몇 있다. 엄마, 안녕, 응, 아니, 알겠어 등이 있다.
반면 내 마음을 나타내는 말일수록 사이가 서먹하다. 좋아해, 부끄러워, 이해해 같은 말이 그러하다.
이런 말들은 뒤에 '~것 같다.'라고 꼬리를 붙여 사용한다. 그러면 한결 말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꼬리를 붙여도 하기 어려운 말도 있다. 서먹하다 못해 무감각해진 말.
'사랑해'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살면서 많이 쓰지 않는다. 잘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I love you"라는데. 이젠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믿지도 못할 것 같다.
'사랑해'라는 말은 그렇게 무감각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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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게 많은 작품의 호불호를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일단 느껴지는 감정에서 헤매고 난 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를 추론하는 성격이다. 오늘 본 영화가 정확히 그렇다.
영화 <너와 나>는 2023년에 개봉한 영화로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잔잔한 영화다. 풍경에 유난히 풍성히 많은 풀을 보면 '저렇게 예쁜 학교가 한국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배우들의 현실적인 학생을 보는 순간 의문을 의문스럽지 않게 보게 된다. 자연스레 감상에 흘러들어 가게 된다.
보다 보면 뇌리에 박히는 영화의 순간순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영화의 말미에 주인공 세미가 방에서 앵무새에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계속 말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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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대로 내게 '사랑해'라는 말은 무감각한 말이다. 그러나 저 장면에서 나는 울었다. 나지막이 읊는 '사랑해'라는 말 때문에 울었다.
처음에는 영화의 앞선 장면들로 인해 운 것인가 생각했으나 나의 한 가지 주접으로 이유는 명확해졌다.
내 주접은 혼잣말이다.
방에서 혼자 세미가 된 마냥 허공에 대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한다.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는 모양 빠진 스스로를 비웃을 생각 따윈 들세 없이 뒤섞인 감정들이 입꼬리에 눈에 눈썹에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입고리는 옆은 웃음을 조금씩 보여주며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눈으로부터 탈출한 눈물이 입고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손으로 닦기도 한다.
가장 바쁜 건 눈썹이다. 눈썹의 움직임은 미세하여 나밖에 모를 정도지만 그 미세한 움직임의 도움을 받으면 '사랑해'란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
뒤섞인 감정들에 무엇이 섞인 건지 아직 모르지만 확실한 건 벅찬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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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사랑해'라는 말이 얼마나 벅찬 마음을 주는 말인지 알게 되었다.
무감각해진 말을 벅찬 말로 바꿔준 영화 <너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