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배가 하소연을 하며 남편과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항상 열심히 살면서 낙천적인 그녀가 이혼을 결심하고 힘들게 필자에게 속내를 꺼내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찌 된 일인지 조심스럽게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힘들게 말을 꺼냈다. 이유는 남편의 지나친 식탐 때문이라고. 아니,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돈을 안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도박도 아닌, 겨우 그깟 식탐 때문이라고? 필자는 뭔 말인가 싶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가 말하는 남편의 식탐은 대충 이랬다.
예를 들어 밥을 먹기 위해 가족들이 식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남편 밥을 퍼주고, 아이들 밥을 퍼주고, 자신의 밥을 퍼서 식탁에 앉으려고 하면 남편은 금방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다시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밥을 한 그릇 퍼주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면 식탁이 깨끗하다는 것.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먹어치워 식탁에는 그녀가 먹을 반찬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의 그런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가족이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기다렸다가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맞는데,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입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고. 처음엔 배가 고파서 그러나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식탐이었다고. 식탐이 심해도 너무 심해서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내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고,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부부모임이 있어 밖에 나가서도 그러니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저녁밥을 먹고 바로 자리에 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다가도 밤 12시가 되면 일어나 과일을 깎아달라고 한다는 것. 직접 깎아 먹으라고 해도 안 깎아 먹고 자려고 누운 그녀에게 깎아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일을 깎아주면 그것을 먹고 바로 누워서 잠을 자다가 배가 고프다고 일어나 냉장고를 뒤져 아침에 먹을 반찬까지 모두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이젠 남편이 밥 먹는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난다고. 얼마나 미우면 그럴까 싶었다. 남편이 음식을 먹는 것만 봐도 토할 것 같다고. 음식을 흘리며 게걸스럽게 쩝쩝대고 소리까지 내고 먹는 것을 보면 사람이 먹는 게 아니고, 짐승이 먹는 것 같아 역겹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농업사회일 때 동네엔 배고픈 거지들이 많았다. 밥 때만 되면 집집마다 거지들이 왔다. 어머니는 항상 밥 한 그릇을 남겨 놓았다 거지들이 오면 주었다. 남겨놓은 밥이 떨어지면 할아버지는 자신의 밥그릇의 밥 한 술을 덜어 줬다. 우리 가족들도 할아버지를 그대로 따라 했다. 필자는 그렇게 할아버지께 말이 아닌, 몸으로 식시오관인 밥상머리교육을 배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자신이 먹을 밥그릇의 밥을 십시일반으로 한 숟가락씩 덜어서 거지에게 주었던 것이다.
또한 불가에서도 식탐은 금물이다. 밥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으며 밥풀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식사 시간도 하나의 수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절에 갈 때 곡물인 쌀을 가져가 부처님께 바치며 소원을 빈다. 절에서 스님들이 먹는 밥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밥 한 술의 무게는 태산과 도 같아 더욱 엄격했다.
예전에 절의 김치가 짠 이유가 조금만 먹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김치가 싱거우면 많이 집어 먹는다고 짜게 담는다는 것이다. 식탐이 있어 음식을 많이 먹어치우면 그만큼 자신의 복이 없어진다고 한다. 음식은 항상 절제하고 감사하며 소식을 했다. 많이 먹으면 몸도 비대해지고,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깊은 산속 암자에서 도를 닦는 수도승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어린 시절 부모님께 식시오관인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필자도 그런 사람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갔다. 다만 남이면 안 보면 그만인데 남편이 그러니 그녀의 고충이 이해가 갔다. 필자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냥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다였다. 다만 앞으로는 음식을 가족 수에 맞게 분배해서 각자의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어쨌거나 이혼까지 생각하는 무서운 식탐을 어찌하면 좋을지. 음식이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서로 양보하며 조금씩 먹어야 하거늘. 그리고 가족이든 누구든 함께 먹는 사람의 몫은 남겨 놓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몫까지 모두 먹어 치우는 것은 배려심이 없는 것이다. 음식을 흘리며 게걸스럽게 쩝쩝대고 허겁지겁 먹는 것도 복스러운 게 아니고, 식사예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함이니 부끄러운 일이다. 지나친 식탐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결코 유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