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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08. 2024

1장. 도망

여행이 아닌 도피였다

지난해 연말, 정확한 날짜는 12월 28일 충격적인 인사 발령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나는 마치 계시라도 받은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퇴사를 내질렀다. 명분이 없다는 핑계로 굳이 굳이 다녔던 이놈의 회사를, 드디어 명분이 생겼다는 핑계로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전적으로 내 의지였지만 반타의로 인한 퇴사였기에 퇴사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의 퇴사 결정은 당연한 것이고 이보다 자연스러울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를 지켜보는 이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무수한 설득이 있었고, 또는 그 설득을 반박하기 위해 무수한 핑계를 대며 나를 지키려 했다(하지만 실패했다. 그 과정에선 나는 나의 바닥을 드러내야 했다).


어찌 됐든 퇴사를 맘먹은 2주 만에 서둘러 회사를 나왔다. 한동안 많이 아팠고, 또 아직 낫지 않은 몸을 끌고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굳이 나를 만나주겠다는 사람들에겐 너무 감사했지만, 사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칠 데라 당시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항상 허했다.


 나의 퇴사 이야기 뒤에는 한 달 정도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했지만 사실 혼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해외를 여행한다는 게 겁이 났었다. 그래서 여행을 할 거라고는 했지만 무료취소가 가능한 숙소만을 예약하고 정작 비행기 티켓은 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은 나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토록 내가 위로를 받을 일을 한 것인가. 이 생각이 들자마자, 마침내 치앙마이 티켓을 끊었다. 그것도 편도로.


그렇게 나의 치앙마이행은 여행이 아닌 도망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의 도망. 어떤 위로와 격려, 응원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 선택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나만이라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한 달이 되든, 2주만이 되든, 아니면 한 달 이상이 되든 일단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퇴사 4주 차만에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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