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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08. 2024

2장. 인정

나는 여전히 나약한 사람이었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이곳 치앙마이의 기온을 느낄 새도 없이 부리나케 숙소로 향했다. 밤 12시 전에 체크인을 해야 추가요금이 없기도 했지만, 이미 지친 심신에, 낯선 환경에서 밤이동을 하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졌기에 얼른 눕고 싶었다. 이런 내 상황을 모르는 택시 기사는 아주 좁고 깜깜한  골목 앞에 차를 세운 뒤 ”걸어갈 수 있지?“하고 나는 엉겁결에 “OK"라 답하고 차에서 내렸다. 초행길이다 보니 지도의 방향도 잘 읽히지 않고 내 캐리어 바퀴 소리에 온 동네 강아지들이 너도나도 짖어대는데. 하, 여긴 어디고 오면 안되는 곳에 온 건가 하는 자책을 하며 ’뭐 당장 돌아가더라도 오늘은 버텨보자‘하는 마음으로 왔던 골목을 또 가고 또 가고를 반복했다. 한 10분쯤 헤맸을까(체감상 1시간 이상이었다). 저 멀리 사진에서 봤던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고 얼른 달려갔다. 11시 55분.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했다.


나를 맞이한 숙소의 직원은 우아하지만 다소 냉정한 말투로 인사했다. 내가 너무 늦게 오긴 했지 라며 또 나는 나를 자책했다. 이어서 직원은 차분히 영어로 숙소에 대한 안내 사항을 전했다. 오랜만에 듣는 영어에 반은 흘려 듣고 반만 겨우 주워 담았다(그 이후로도 쭉 그랬다). 나의 영어 실력을 눈치라도 챘는지 직원은 설명은 그만하고 바로 나의 방으로 안내했다. 무거운 나의 캐리어를 들어준 직원에 또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뭘 이렇게 많이 싸왔을까. 직원은 방키를 넘기고 금방 사라졌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아니 방이 뭐 이래? 사진과는 많이 다른 시설과 객실의 크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객실은 또 어찌나 어둡던지, 치앙마이는 나를 전혀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주 별일 아닌 일인데 어찌나 서럽던지. 어찌됐든 나는 자야했고, 다시 돌아갈지 내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여전히 어두운 치앙마이의 아침. 아니 그건 내 착각이었다. 침대와 마주한 커튼 하나를 살짝 들춰내니, 웬걸 이렇게 밝다고? 쨍한 푸른빛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빛 풀잎들이 힘차게 아침 인사를 하는 듯했다. 후다닥 나갈 채비를 하고 숙소를 나서는데. 어제 만난 직원이 다른 손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있다는걸 약간 티내기 위해 주위를 살짝 맴돌다 숙소 문을 나섰는데. 아니 뭐 나는 투명인간이야 뭐야. 살짝 올라온 텐션이 다시 확 가라앉았다. 한달살기를 치앙마이로 결정한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는데. 왜이리도 나에게 차갑고 친절하지 않는걸까. 작년과 달리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얘네도 내가 여길 도망온걸 아는걸까 하는 괜한 주눅이 들어 또 다시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뭐 후회는 후회고, 점심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밥을 먹어야 겠다 싶어 작년 이곳에서 먹었던 맛집을 찾아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갈비국수집. ”한명?“ ”네, 한명“ 친철한 사장님을 따라 자리에 앉았고 전에 먹었던 것을 기억해내 주문을 했다. 조금 기다린 뒤 나온 갈비국수 한 그릇과 차가운 차이라떼 한 잔. 실망스러운 마음에 국물 한 숟가락을 들이 밀었고 그대로 넓적한 면과 고기를 한번에 입에 넣었다. 정신없이 한 그릇을 비워내고 식당을 나섰다. 구글 지도에서 금방에 있는 평점이 꽤 높은 작은 카페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꽃과 진한 핑크빛 꽃이 어우러진 카페의 첫 인상과 인상 좋은 사장님의 밝은 웃음이 드디어 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눈치없이 아이스 라떼를 시켜 맛 없게 커피를 즐겼지만, 갑작스럽게 합석을 해도 되겠냐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 피우는 담배 냄새는 살짝 힘들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비로소 이제서야 치앙마이가 나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작년 여행과 달리 치앙마이가 낯설었던 이유를 도착한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고 위로나 응원 따위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의미없는 친절과 미소가 전부였다. 나는 마치 습관처럼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나는 그렇게 나의 나약함을 인정했고 아직 서로가 낯선 이곳을 그대로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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